영장실질심사 도입
현산면 일평 출신

 

 우리나라 사법개혁의 틀을 확립했던 윤관 전 대법원장이 지난 14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윤관 전 대법원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 9월 제12대 대법원장에 임명돼 6년간 사법부를 이끌었는데 그는 취임사에서 “국민을 위하고, 국민의 편에 선 사법개혁”을 주장했고 이어 “제도 개선 없이 사법개혁은 없다”며 법조계와 학계, 언론계 등 인사로 구성된 사법제도발전위원회를 출범해 제도 개선에 나섰다. 그 결과 우리나라 최초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 제도가 도입됐는데 이는 판사가 수사기록 등 서류만 보고 구속영장을 발부하던 것을 구속영장 전 피의자를 대면한 후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것으로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했다. 또 ▲기소 전 보석 제도 도입 ▲서울 민형사지법 통합 ▲상고심사제 ▲특허·행정법원 설치 ▲간이상설법원 설치 등으로 법원의 전문화와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높였고 ▲법관 인사위원회 명문화도 이뤄냈다. 일선 판사 재임 시 피고인들이 수갑을 풀고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사법부의 위상을 높이는데도 기여했다. 대통령 국외순방 때 대법원장이 환대를 나갔던 관행을 없앴고, 대법원장실에 걸려있던 대통령 사진도 내렸다. 청와대에 법관이 파견 가거나 정보기관 직원이 법원에 머무르는 관행도 없앴다. 대법원장 시절 12·12 군사반란 및 5·17 내란 혐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 전두환·노태우씨에게 각각 무기징역·징역 1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며 그릇된 과거사를 사법적으로 청산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윤관 전 대법원장은 현산면 일평리에서 현산면장을 지낸 아버지 윤웅과 어머니 연안 이씨 이정원 사이의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광주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제10회 고등고시에 합격해 판사로 재직했다. 이후 부장판사, 청주지방법원장, 전주지방법원장, 대법관을 역임했다. 그가 대법원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은 1993년, 고위직 재산공개의 회오리바람으로 당시 현직 대법원장이 자진사퇴하고, 부동산투기 의혹을 받았거나 부동산을 지나치게 많이 보유한 법관이 20여 명에 이르면서 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사법부 내에 청렴판사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던 그가 대법원장으로 취임하게 됐다고 한다. 
윤관 전 대법원장은 퇴임 한 달 전 처음이자 마지막인 외부 강연에서 “사법권이 정치권력,  단체, 여론 등 어떤 간섭으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고 했고 퇴임사에선 “법관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국민이 믿고 의지할 마지막 언덕마저 잃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원장으로 장례가 치러진 고인은 청조근정훈장(199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15)을 받았고 저서 <신형법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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