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슈퍼 김재창 사장
다사다난했던 나의 기록

김재창씨가 63년간 써 내려간 일기에는 젊은 날의 추억과 함께 새로운 내일을 맞이하는 각오가 담겨 있다.

 

 현산면 황산리에서 황산슈퍼를 운영하는 김재창(88)씨는 26살부터 88세인 지금까지 63년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쓰고 있다.
오랜 기간만큼 일기장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수성펜이 번져 가장자리가 파란색으로 물들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든 페이지도 있고 또 일기장이 삭아 만지기도 조심스러운 것도 있다. 60~70년대 당시 누구나 그렇듯 김씨도 가난을 피하고자 서울로 상경했고, 영화사 촬영팀에 몸을 담았다. 당시 일기에는 매일 점심을 거를 정도로 힘들었던 자신의 처지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러면서도 내일의 희망을 다짐하며 하루를 버티는 젊은 김씨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씨는 “가끔 일기를 보고 있노라면 젊은 시절 참 고생이 많았구나, 너무도 가난했구나 하는 씁쓸한 미소가 나온다”고 말했다. 
직업상 영화를 많이 접해 일기 첫 장에는 ‘애섬’, ‘그리운 그 얼굴’, ‘햇빛 쏟아지는 벌판’, ‘위기의 순간’, ‘태양을 향하여 달려라’ 등 100편이 넘는 당시 김씨가 감상한 영화 목록이 쓰여있다. 일기엔 가계부도 함께 기록했지만 돈에 대한 개념이 한정적으로 바뀌는 느낌이 싫어 몇 년 쓰다 그만뒀다고 한다.
일기를 쓰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란다. 지금도 저녁 식사를 마치면 하루를 복기하며 일기장을 편다. 
젊을 때는 하루하루 사건 사고에 치여 일기 내용도 다사다난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안정감과 함께 일기의 내용도 변화를 맞았다. 김씨에겐 일기만큼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매일 4시 반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 것, 매일 1시간 온몸 스트레칭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한다. 
소여물을 주고 TV를 보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다. 또 단조로운 일상을 피하고자 독서에서 영감을 받은 글귀를 시작으로 하루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일기 내용을 더했다. 좋은 문구가 그날의 주제가 된 셈이다. 
63년간 매일 써 내려간 일기, 애착이 클 법도 하지만 얽매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김씨는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은 나에겐 뇌를 운동하는 것이다. 몸과 정신이 건강해야 타인에게 피해 없이 건강하게 삶을 마무리 할 수 있다”며 “남겨진 일기장은 애들이 알아서 하겠지,  불에 태우든지 아니면 아버지는 이렇게 살았구나 하고 가끔 읽어 볼련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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