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 방산리 전방후원분
금동관 장식구슬 수습

북일 방산리 장고분에서 금동관 부착 장식구슬이 수습돼 거대 권력자가 북일면을 중심으로 활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나주 신촌리 금동관과 해남장고분 수습 유리구슬)  
북일 방산리 장고분에서 금동관 부착 장식구슬이 수습돼 거대 권력자가 북일면을 중심으로 활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나주 신촌리 금동관과 해남장고분 수습 유리구슬)  

 

 북일면 방산리 장고분에서 수습된 유리구슬이 나주 신촌리 고분과 영암 시종면 내동 쌍무덤에서 나온 금동관 부착 구슬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남군은 지난 2021년 10월 장고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 이곳에서 유리구슬 4개를 수습했다.
수습된 유리구슬 4개를 분석한 결과 그 중 하나가 신촌 및 영암 쌍고분에서 발굴된 금동관 부착 구슬과 유사한 성분과 모양인 것으로 이번에 확인됐다. 
북일 장고분은 전방후원분으로 왜계통 무덤양식이다. 무덤 크기는 76m, 우리나라 고분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거대한 규모의 고분에 금동관까지, 5~6세기 나주 및 영암 세력을 넘어서는 거대 권력자가 북일면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것이다. 
나주와 영암, 해남군에 대규모적으로 조성된 고분군들은 백제 웅진시기에 조성된 것이다.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에 의해 한성이 함락되자 도읍지를 서울 한강에서 지금의 공주로 천도, 웅진시대를 연다.
이 시기에 해남 북일면과 영산강 일대에 대형 고분군이 출연한다. 그리고 그 고분군 중 나주 신촌과 영암 내동 쌍고분에서 금동관이, 해남 북일면 장고분에선 금동관에 부착된 구슬이 발견된 것이다. 금동관은 현지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백제 왕실에서 하사한 것으로 학계에선 보고 있다. 
고대사 연구에서 북일면 지역은 상당히 흥미로운 곳이다. 북일지역에선 내동리 밭섬 고분을 비롯해 신방리 즙석분, 원동 원형고분, 방산리 전방후원분 등 다양한 고분군이 확인되고 있다. 이들 무덤은 마한시대 목관이 아닌 석관을 사용하고 있어 왜 계통 무덤에 가깝다. 
이와 관련 학계에선 백제가 영산강 유역과 해남의 국제해상 바다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왜계통 세력을 각지에 분산 배치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한 예로 금동관을 들고 있다. 당시 영산강 일대나 해남의 경우 금동관을 자체 제작할 정도의 기술 또는 그와 관련된 유적이 발굴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웅진시기 백제의 왕이 지방세력들에게 금동관을 하사했다는 것이다. 
해남은 마한소국 중 하나인 신미국 또는 침미다례가 위치한 곳으로 마한시대 거대 해상세력의 중심 무대였다. 신미국 멸망 후 해남 곳곳엔 왜 계통의 무덤, 그것도 너무도 다양한 형태의 왜계통 무덤이 속속 발굴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당시 해남은 지금의 국제도시 싱가폴처럼 다양한 해상세력들이 거주하고 머물렀던 항시 또는 기항지였을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상호간 조화를 누렸던 것이 해남의 문화 특성일 것이란 주장이다. 
한편 장고분에서 금동관에 부착된 장식구슬이 발견됨에 따라 해남 고대사 관련 연구도 활기를 띌 전망이다. 해남의 고대사는 영산강 유역과 달리 학계의 연구가 활발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관련 연구논문도 극히 적다. 그러나 송지면 군곡리에서 국제해상도시의 면모가 속속 발굴되고  여기에 장고분에서 금동관 장식구슬까지 나옴에 따라 해남 고대사 연구논문도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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