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농민회 창립 30주년 기념
「30년 넘어 다시 30년」 발간

1987년 해남군에서 시작된 수세거부투쟁은 전국 농민조직을 하나로 묶어냈고 또 해 
남군농민회 창립 기틀이 됐다.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1월11일 해남에서 농민추수봉기가 일어났다. 
 화원면을 제외한 전 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추수봉기는 미군정의 친일파 등용과 미곡 강제공출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 
 해남 추수봉기 규모가 워낙 컸기에 브루스 커밍스는 그의 저서「한국전쟁의 기원」에 해남의 봉기 규모를 자세히 기록했다. 
 11월 추수봉기로부터 30여년이 지난 1987년 11월 해남군에 또다시 대규모적인 농민투쟁이 일어났다.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저수지 물값을 폐지하라는 수세거부 투쟁이었다.

 당시 농지개량조합은 일제강점기에 존재했던 수리조합을 이어받은 조직으로 농민들에게 물값을 징수했다. 
 물값은 갑오농민전쟁 당시에도 저항의 상징이었다. 
 해남에서 시작된 저수지 물값 거부 운동은 이후 전국으로 확대돼 농민운동을 하나의 전국 단위로 묶어냈다. 
 산발적으로 움직였던 농민운동이 수세거부 투쟁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해남군농민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30년 넘어 다시 30년」을 발간했다. 해남군농민회가 창립됐던 1990년부터 2020년까지의 기록물이다. 
 책 발간을 기념해 해남군농민회는 지난 11월1일 해남읍 카멜리온 웨딩홀에서 출판식을 가졌다. 
 해남군농민회가 창립되기 전인 1987년 해남에선 수세거부투쟁에 이어 산이면을 중심으로 고추 수입 반대 및 가격보장을 요구하는 대규모적인 투쟁이 일어났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면단위 농민회가 속속 탄생하는데 가장 먼저 북일면농민회가 1988년 창립됐다. 
 같은해 산이면, 현산, 화산, 계곡농민회가 탄생했고 다음해인 1989년 옥천면과 마산면, 송지면, 1999년 4월에 문내면농민회가 문을 열었다. 9개 면에서 탄생한 농민회를 기반으로 1990년 9월1일 해남군농민회가 공식 출범하게 된 것이다.
 해남농민회 출범 이후 화원면을 마지막으로 13개 모든 면에 농민회가 구성돼 단일대오를 갖게 됐다.

 당시 해남군농민회는 창립선언문을 통해 일제강점기 하의 민족해방운동, 해방 후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싸웠던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아 수세폐지 싸움, 산이면 고추값 보장싸움의 승리 경험을 바탕으로 대동단결 해 전국 700만 농민과 함께 반농업적, 반농민적 악법을 철폐해 농민이 사람 대접받는 세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결의를 모은다고 밝혔다. 
 해남농민회 출범 이후 해남에서 이뤄진 대규모적인 투쟁 대부분은 농민투쟁이었다.  쌀값 보장투쟁을 비롯해 WTO쌀수입반대, 한미 FTA 반대 등을 주장한 농민시위로 해남읍 중심거리는 농민들의 행진과 깃발이 나부꼈고 가을 추수기만 되면 벼 전량수매 및 가격보장을 위한 투쟁의 상징으로 군청 앞에 벼를 야적했다.

 지금은 군청 앞에서 다양한 계층의 시위가 연일 일어나고 있지만 2000년대 초까지 해남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시위는 농민시위였다.
 한편 해남군에서 시작된 수세거부 투쟁은 김대중 대통령 때 폐지됐다. 
 그러나 쌀값보장은 여전히 농민투쟁의 핵심 구호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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