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째 김산업에 종사
김산업 대부 정경섭 대표

일본에서 선진지 견학을 올 만큼 첨단시설로 설비된 감로수산 공장 설비에는 정경섭 대표의 일생이 녹아 있다.
일본에서 선진지 견학을 올 만큼 첨단시설로 설비된 감로수산 공장 설비에는 정경섭 대표의 일생이 녹아 있다.

 

 김가공 시설분야의 권위적 위치인 일본에서도 선진지 견학차 온다. 기술력에 있어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김가공 공장이 해남에 있다. 
화산면 감로수산 정경섭(70) 대표, 해남 김산업의 중심 인물이다.
정 대표 집안은 4대째 김산업에 종사해온 집안이다. 정 대표의 부모님과 조부 모두 김양식에 몸담았고 정 대표의 장남도 대를 이어 김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정 대표는 어린시절부터 마른김을 생산하는 모든 과정을 함께 했다. 대나무를 칼로 잘라 볏짚새끼줄로 엮어 발을 만들었던 시절부터 김양식 기술의 고도화가 이뤄지기 전의 채묘 기술까지, 그는 집안일을 돕기 위해 중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 밑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배웠다. 그리고 1970년대 북일면에서 화산면으로 옮겨온 후 자신만의 도전을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시 해남에서 생산된 김 대부분은 일본으로 수출했기에 보통 사람들에겐 너무도 귀한 음식이라 100장 1속을 사는 집은 거의 없고 10장~20장을 나줘 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과 일본의 김양식 기술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일본의 기계화가 시작되면서 한국을 앞서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앞다퉈 일본의 기계를 들여왔는데 정 대표도 반자동 기계를 도입, 한국 여건에 맞는 기계로 개조해 나갔다. 
정 대표는 “김산업이 커지면서 일본 기계를 경쟁적으로 사들이면서 국내에서 기계 임대료를 내지 못해 망한 회사들이 많았다. 그때 국내 실정에 맞는 기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개발한 기계와 국내 설비를 접목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말했다.

 특히 화석연료에서 전기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획기적으로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는 히트펌프 개발에는 아픈 추억이 있다.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고 가르쳐주는 이도 없었기에 60억원 상당의 개발비를 쏟았지만 실패했다. 
정 대표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안 되면 부숴버리고, 또다시 만들고, 그렇게 수없이 많은 기술자를 불러 실험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과정에 특허를 냈어야 했는데, 그저 설비를 구축하는 것에만 열을 올렸다. 특허를 가져오지 못한 것은 지금도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도전으로 결국 획기적으로 연료를 절감할 수 있는 설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불순물 제거와 살균처리 등에서도 자신만의 노하우를 적용하며 국내산 김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김산업연합회 회장을 5년 동안 역임할 수 있었고 국토해양부 장관상, 농수산물 백만불 수출탑, 전남도지사상, 해양수산부 장관상 등 각종 상을 휩쓸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정 대표의 공장을 보기 위해 일본에서 선진지 견학을 올 정도로 기술력에 있어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도 확고하다. 해남김의 브랜드 상승과 해양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서는 것이다.

 정경섭 대표는 “지금은 브랜드 전쟁이다. 해남에서 가공된 품질 좋은 김이 다른 지역 이름으로 팔려나간다. 생산지와 가공공장을 표기해서 해남김 브랜드의 명성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밀식과 각종 화학물질이 해양환경을 망치고 있다. 과거 조상님들에게 물려받은 바다를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주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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