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해남우리신문 편집인
박영자/해남우리신문 편집인

 

 80년 5월 광주가 피바다가 됐을 때 김대중은 철창 안에 있었다. 그는 광주항쟁이 한창 지난 후에서야 교도관이 건네준 신문을 통해 광주항쟁의 참상을 알게 된다. 
그로부터 17년 후인 1997년, 광주망월동을 찾는 김대중은 오열했다. 
전두환은 80년 5월 광주항쟁의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김대중을 내란음모의 수괴로 지목,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미국, 일본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난 구명운동으로 전두환은 김대중을 무기수로 감형했다. 광주학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전두환으로선 민주화의 상징인 김대중을 죽일 수 없었다. 영화 ‘길위에 김대중’에서 이휘호 여사는 광주가 남편을 살렸다고 말했다.

 ‘길위에 김대중’은 박정희와 전두환에 의해 전라도가 어떻게 지역감정의 희생물이 됐고 전라도와 김대중이 빨갱이가 됐는지의 과정을 담담히 담아낸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김대중은 민주주의는 국민들에 의해 이뤄져야 진정한 민주주의임을 주창한다. 또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주도하는 지방자치가 돼야 국민이 진정한 주권자로 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과의 협력과 화해도 외친다. 그의 남북화해 주장은 반공과 멸공으로 정권의 정당성을 찾으려 했던 박정희에겐 정면 도전이었다. 

 김대중은 주권주의자였다. 
미국 망명 생활에서 한국 국민은 민주주의를 할 역량이 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할테니 너희는 독재정권을 지지하지 말아달라며 150여회에 이른 길위에 강연을 강행했다. 
2024년 4월10일 제22대 총선, 국민의힘은, 더 구체적으론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운동권 청산론을 내걸었다. 
서울 중성동갑에 국민의힘 주자로 나선 윤희숙 전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586 운동권을 향해 오기정치, 기득권 정치라며 운동권 청산의 기수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상대 후보인 민주당 임종석을 겨냥한 표현이지만 정권심판론을 들고 나온 민주당에 대응할 프레임으로 운동권 청산을 들고 나온 것이다.  
국민의힘 전신인 박정희의 공화당과 전두환의 민정당은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진영을 빨갱이로 낙인시키고 지역감정을 부추켜 전라도를 폄하시켰다. 
민주세력을 빨갱이, 전라도를 고립시키는 고도의 정치 프레임으로 정권연장을 꾀한 것이다. 

 이젠 운동권 청산이라는 프레임이 등장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운동권 청산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굴욕외교에 이은 남북간의 긴장강화, 재벌중심의 경제정책으로 회귀한 현 정권의 정당성을 위해 운동권을 사회의 악으로 규정하는 또 하나의 고도한 정치 프레임인 것이다. 
이러한 정치 프레임은 철저히 국민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혐오를 불러일으키며 국민을 분열시킨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586운동권이란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50대 세대를 일컫는다. 
지금의 대통령 직선제와 지방자치는 80년 5월 광주항쟁과 6‧10항쟁 등 많은 이들의 죽음과 희생 속에서 얻어진 결과물이다. 
또 몇몇의 운동권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만든 결과물이다. 

 따라서 586세대는 한국 민주화를 이끈 상징적 언어이다. 이를 소수의 운동권으로 축소 폄훼하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고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와 호남을 또 다시 비하하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지역감정이다. 
또 군사정권의 뿌리인 국민의힘이 운동권 청산을 들고 나왔다는 것은 한국 역사의 정통성이 군사정권에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를 일궈낸 세대를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하며 철저히 그 가치를 훼손시키겠다는 것은 지금의 윤석열 정부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디올 명품백의 돌파구를 운동권 청산으로 넘어서겠다는 전략이다.

 다큐 영화 ‘길위에 김대중’ 관람을 권한다.
길위에 김대중은 우리의 현대사를 관통한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시대정신에 공감하고 청소년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이해한다. 
특히 과거로 회귀하는 지금에 이르러 김대중의 정치철학의 가치는 다시 살아나야 함을 이해한다. 
또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정권일수록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희생할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 고도의 정치 프레임을 씌우는 과정을 읽게 된다.     
김대중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와 당당한 외교, 남북화해, 민생 중심의 경제는 지금도 우리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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