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해남대표 관광지
홍교비석 전남문화재 된다

조선시대 해남대표 관광지였던 홍교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남천교(홍교) 중수비는 전남도 문화유산 지정을 앞두고 있다.  
조선시대 해남대표 관광지였던 홍교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남천교(홍교) 중수비는 전남도 문화유산 지정을 앞두고 있다.  

 

 한때 해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홍교였다.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로 용머리 조각과 풍경까지 매달아 놓아 매우 웅장했다. 다리 이름은 남천교, 그러나 해남사람들은 다리가 무지개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 홍교라 불렀다.
무지개다리가 들어서기 전 이곳 다리는 돌다리였는데 1778년 홍수에 허물어져 버렸고 그 후 흙과 나무로 다리를 대신했지만 해마다 무너지길 반복했다. 
이에 1781년(정조 5년) 이곳 현감이었던 김서구가 대흥사 스님에게 시주를 요구하고 돌을 깨기를 청해 무릇 68일 만에 무지개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리 건립을 기록한 남천교 중수비와 다리 밑을 흐르는 맑은 물을 찬양한 청류정이란 비석을 세웠다. 홍교 밑을 흐르는 물줄기는 ‘홍교유수(虹橋流水)’란 이름으로 해남8경에 들어갈 만큼 이곳은 조선시대 해남의 대표적인 유람지였다.
너무도 웅장하고 아름다웠던 홍교, 재미있게도 이 다리를 건립한 이가 해남 우슬재와 아침재를 깎아내린 김서구란다. 우슬재와 아침재에 얽힌 이야기는 해남 대표적인 전설이다. 해남현감으로 부임해 오는 이마다 이곳의 텃세 때문에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나자 해남현감으로 온 김서구가 제일 먼저 한 일이 해남의 좌청룡과 우백호인 우슬재와 아침재, 인재를 상징하는 호산을 깎아내렸다는 이야기다. 
또 홍교는 대흥사 다리 중 가장 아름답고 웅장했던 피안교를 뜯어와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남천교 중수비에는 공사를 주관했던 총념(憁念), 총밀(憁密), 봉찰(奉察) 이라는 화주승이 기록돼 있는데 대흥사에서 중요 소임을 맡았던 스님들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대흥사 피안교는 1751년 폭우로 유실되자 무지개처럼 둥글고 용이 누워있는 모형 즉 홍교로 건립됐다. 공사에 참여한 여러 장로(張老)들이 두륜산은 무너져도 이 다리는 이지러지지 않고 만폭이 말라도 다리는 무너지지 아니할 것이라며 다리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했다.
그런데 그토록 아름답던 피안교는 조성된지 30년 만에 헐리고 만다. 
‘이 다리를 허물지 않으면 대둔사가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풍수의 말을 듣고 누군가 캄캄한 밤을 이용해 허물어 버린 것이다. 
대흥사 피안교가 허물어지던 시기, 피안교와 비슷한 모양의 남천교가 중수된다. 남천교 중수비에도 스님들이 지었다는 내용과 화주승 이름도 기록돼 있다. 
세월이 흘러 홍교다리도 사라지고 그 옆에 건립됐던 남천교 중수비도 청류정 비석도 어디로 사라졌다. 
그런데 2019년 해남군청 신청사 건립을 위해 해남읍성 주변 발굴조사 중 땅에 묻혀 있는 남천교 중수비와 청류정 비석이 발견됐다. 
이중 남천교 중수비는 비석 머리의 전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용두의 표현과 비늘이 섬세하게 조각된 몸통, 뒷면의 입체적이면서 화려한 글 모양 등 남천교의 웅장함 만큼이나 화려했다. 
남천교 중수비와 청류정 비석은 현재 해남군청 앞 군민광장에 세워져 있고 전남도 문화유산 지정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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