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성교 중창비석
전남도지정 앞둬

삼산면 송정리 수로에 버려졌던 어성교 중창비가 전남도 문화유산 지정을 앞두고 있다.(2013년 모습)

 

 여름철이면 해남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피서지가 어성교 다리 밑이다. 어성교는 조선시대에도 가장 사랑받는 피서지였다. 윤선도 후손인 지암 윤이후(1636~1699)가 남긴「지암일기」에도 어성교에서 사람을 만나고, 무더운 여름 수십 명이 모여 어성천에서 천렵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토록 해남민의 사랑을 받았던 어성교이니 만큼 당연히 다리에 대한 기록도 남겼다. 어성교 중창비이다. 비석에는 조선 1747년(영조 23) 때 중수됐다는 기록과 시주, 석공, 공양주, 참여한 스님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런데 이 중창비는 수난 아닌 수난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새 다리를 놓으면서 버려진 신세가 된 것이다. 다행인지 버려진 비석을 삼산면 송정리 한 주민이 지게에 짊어지고 와 집 앞 수로에 놓으면서 비석은 연고도 없는 송정리로 오게 됐다. 
이후 송정마을 사람들이 집 앞 수로에 있던 비석을 들녘 수로로 다시 옮겼다. 옛 문화유산이 다 그러듯 이 비석도 판판하게 잘 생겼다보니 그 위에다 불도 피우고 비료 등을 올려놓은 자리로 이용됐다. 그리고 2013년 해남우리신문 보도로 비석의 신세가 공개됐다. 
다시 시간이 흘러 2021년 김희태 박사에 의해 호남학산책에 소개됐고 해남군은 2022년 송정리 들녘 수로에 있던 비석을 보존처리 후 해남군청 앞 군민광장으로 옮겨왔다.   
조선시대 때도 천엽을 즐겼던 어성포는 일제강점기까지도 범선이 모여들고 젓갈이 거래되는 해남 대표 포구였다. 바다와 육지를 연결했던 어성포에 모여드는 귀선들의 장대한 모습은 어성귀범(漁城歸帆)이란 이름으로 해남8경에도 당당히 올랐다.
‘어성교중창석비’는 지금 전남도 문화유산 지정을 앞두고 있다. 유례가 드문 18세기 교량 관련 기록유산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들녘 수로에 버려진 신세였던 비석이 이젠 문화재로 귀한 대접을 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