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선/땅끝아해
                                        윤지선/땅끝아해

 

 겨우겨우 살아서 겨울이요, 많이 보라고 봄이라. 추위에 아랑곳 않고 김을 쳐온 땅끝 젊은이들 덕에, 요즘 봄바람에 휘날리는 여인네 머리칼 같은 김발이 바닷물에 출렁이고, 어민들의 마음도 출렁인다. 
송지면에는 부모의 농사를 도우면서 살아가는 젊은 U턴 세대들이 유독 많다. 이들이 계속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김과 전복이 계속 잘 팔리는 데만 있지 않다. 
지난여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방류되기 시작했다. 그때 단 한 번 일어난 일도 아니고 현재 진행형인데도 사람들은 잊어버린 듯 실감치 못하고 있다. 기후재난이라고 할 만큼 뜨거워지는 바다, 언제 다시 김전복 양식에 기댄 땅끝바다 경제가 휘청일지 모른다. 
위기감은 곧바로 우리 아이와 같이 놀며 자랄 동무들이 떠나고 우리 아이가 다닐 학교가 사라지는 일로 연결된다. 
다른 면단위에 비해 경제가 활성화 돼있는 편이라지만, 가장 먼저 소멸될 수 있는 기후위기 취약지구이다. 수도권에서 생태유아를 표방하는 공동육아 교사 시절, 땅끝 해남은 안전한 먹거리가 올라오는 친환경 생산지로만 알았다. 
그런데 막상 내려와 살아보니 땅끝은 먹는 바다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 영양염류가 풍부해 바다도 땅도 생명력이 강한 곳인지라 맛도 있지만 멋이 있고, 무엇보다 공부할 거리가 정말 풍부한 살아있는 생태교육학습장이다. 
흔한 백로 떼인가 싶어 지나칠 뻔하다가 자세히 보니 주걱처럼 생긴 부리로 물풀과 저서생물을 떠먹고 있는 저어새는 전 세계 5,000 마리 남은 멸종위기종이다. 사람들이 쓰레기를 태우는 갯가에는 아직 짱뚱어가 아바타 같은 푸른 점을 반짝이며 뛰고 있다. 
달마산 박쥐는 지금도 땅끝 곳곳에 귀한 구아노 똥을 싸러 내려오곤 한다. 해남사람들에게는 흔해 보였을지 몰라도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전세계적으로도 귀한 멸종위기 생명체들이다. 
모니터링을 시작해온 지난 10년 사이 해마다 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된 목록도 얼마나 많던가. 아무리 다 받아서 바다라지만 막 개발에 가장 먼저 멸종 시계가 작동하고 있다. 이제 해남도 ‘먹는 바다에서 배우는 바다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1차 생산의 바다에 위기가 닥쳤으니, 교육하는 바다로 전환해야 마땅하다. 경관자원과 자연자원을 망쳐가면서까지 랜드마크를 만들고 풍경을 독점하는 기업형 시설을 만들면 뭐하나. 정작 그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자연은 파괴돼 그 자리에 없는데. 이제 더 이상 관광버스로 사람을 나르는 식의 관광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그렇게 오는 사람은 그렇게 간다. 사람을 몇당 얼마 돈으로 보게 된다. 
코로나 이후 ‘한달살이 일년살이’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마이크로 관광’으로 여행과 이주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줄 서서 돈 많이 만드는 핫플레이스보다 오래오래 그곳에서 제 가치를 잃지 않는 힙플레이스가 더 오래 사랑받는다. 우리 아이들의 고향이 될 땅끝도 핫플보다 힙플, 힙플 너머 딥플레이스로 조심스럽고 귀하게 자연을 만나고 공부하는 이들이 와야 파괴되지 않고 제 가치를 잃치 않는다. 
아이들은 소비자로 자라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다른 생명 존재들을 만나 친구가 돼 놀고자 이 세상에 온 생명들이다. 그래서 공룡과 동물을 그렇게도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해남에는 동물 먹이주기 체험조차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무안회산백련지 동물원 놀이터에 땅끝아해 엄마들과 아이들이 견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곳에서 맘껏 놀면서 우리동네 땅끝황토나라테마촌을 다들 떠올렸다. 많은 시설과 돈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았다. 이 너른 땅에 이런 소규모 동물 방목지만 있어도 읍에 있는 아이들까지도 기꺼이 놀러올 것이 분명했다. 
머지않은 근미래 동시우주를 본 것일까? 다들 우리 사는 지금 여기 땅끝의 아이들과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자연 방목형 생추어리 공간들이 생겨나면 좋겠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렇게 이곳, 지역 사회를 설득하고 싶다. 
봄이면 엄마들과 공동텃밭을 하며 주말공동육아도 시작해보기로 했다. 달마산과 땅끝바다의 해남 히든어스를 만나며 다시 아이들과 부모 동료들과 함께할 상상에 가슴이 뛴다. 경칩에 깨어나는 생명들처럼 이제 기존 패러다임 밖으로 나가자. 눈뜨면 봄이요, 문밖이 해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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