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단체도 언론도 해남은 이것을 고쳐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세상에는 고쳐야 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해남군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고쳐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혹 고쳐야 한다고 말을 외치면서도 정작 자신은 해남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제시하려 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기란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잘못을 지적하고 그것을 고치려 애쓰기 보단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오히려 사회의 발전을 촉진시킨다는 것 말입니다.
요즘 해남에 여러 사회단체들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설립 정당성을 말합니다. 해남발전을 위한 정당성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체들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군민들과 함께 해남발전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고 그것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칫 해남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만을 도출시키고 그것에 대해 지적하는 수준에만 머무른다면 군민들의 사랑을 받기란 어렵습니다.  
단체의 활동은 누구나에게 보장돼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외치는 모든 것을 군민들이 공감하기란 어렵습니다. 특히 명분뿐인 단체 이름만을 가지고 매사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더욱 받아들이기 힘이 듭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회에 대한 잣대, 상대방에 대한 비판의 잣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잣대를 함부로 휘두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없는, 나를 제외한 잣대는 오히려 세상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사회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것은 발전을 전제로 합니다. 발전을 전제로 하는 비판은 상대방의 마음까지 상하게 해선 안 됩니다. 우리가 토론을 주장하고 상생을 말하는 것은 문제점 속에서 함께 발전방안을 찾아내자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문제점을 고치겠다고 나섰다면 그 속에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일은 사람이 합니다. 갈등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마저 잃게 합니다.
해남에는 풀어야할 과제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특정사람만이 풀어야할 과제는 아닙니다. 모두가 함께 풀어야할 일입니다. 주변에서 비판을 자주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모두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비판 속에 자신은 없다는 것입니다. 풀려는 방식도 일방적입니다. 우리사회는 일하는 사람, 비판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일이 다를 수 있습니다. 또 서로가 상대방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일방적인 비판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8만군민이 희망이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정말 맞습니다. 희망은 서로의 격려 속에서 나옵니다. 가능성과 대안속에서 나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고치려는 사람과 자신의 장점을 살려나가는 사람 중 누가 성공할까요. 한 지역의 문제점을 도출시키는 것보다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찾아 지향성을 찾아가는 활동 중 어느 것이 지역의 발전을 빨리 가져올 수 있을까요. 당연히 미래지향적인 활동이 성공을 하겠지요. 어느 마을에 문제점이 정말로 많습니다.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보다 마을의 발전을 놓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모델을 만들면 사람들의 인식도 일순 변화를 한다고 합니다. 비판에 앞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사회를 발전시키고 사람들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당신은 사회에 대해 비판만 하세요라는 권리를 사회는 아무에게도 주지 않습니다. 군민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남군의 발전은 공동체에서 나옵니다. 공동체의 힘은 상생에서 나옵니다. 또한 갈등조정의 힘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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