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면서 시 창작활동 했던 김태정시인
투병생활 중 6일 생 마감해 안타까움


고 김남주 시인과 인연이 깊었고 미황사와 송지 신기리에서 창작활동을 했던 시인 김태정씨가 지난 6일 생을 마감했다.
유독 소녀 같은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많았던 시인, 받는 것에 익숙지 않아 용돈이라도 주려고 하면 갖은 핑계거리를 만들어야만 했다고 금강스님은 김 시인을 회고한다.
김 시인은 2003년 미황사와 인연을 맺어 1년을 기거한 후 절 아랫마을인 장춘리와 신기리에서 생활했다.
그의 첫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은 신기리에 거주할 때 출간됐다.
올해 초 3개월 시한부 삶의 암 판정을 받은 김 시인이 해남과 연을 맺게 된 건 10여년 전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소설가 정해주씨와 미황사를 들른 것이 인연이 됐다.
그 당시를 시인은 그의 시 「미황사」에서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사랑도 나를 가득하게 하지 못하여/ 고통과 결핍으로 충만하던 때/ 나는 쫓기듯 땅끝 작은 절에 짐을 부렸습니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는 것은 열이레 달이 아닌 시인 자신이었다.
시인에게 있어 미황사는 “표류하는 영혼이/ 내생을 꿈꾸는 자궁을 찾아들듯/ 떠도는 마음이 찾아든 곳”이었다. 미황사는 시인에게 어머니의 자궁처럼 의지하고 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때가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
김태정 시인은 91년 문예지 ‘사상문예운동’에 우수(雨水) 외 여섯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며, 작품집으로 전래 동화집 ‘자루 속에 빠진 꼬마 제롬’이 있다. 등단 13년만인 2004년에 시인의 첫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이 창비에 출간됐다. 김남주 시인이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재직 시절 간사를 맡으면서 문예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박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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