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행복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면, 어느 개그맨의 짧은 대사가 먼저 떠오릅니다.“국민여러분, 행복하십니까?”비록 웃음을 자아낼 목적으로 쓴 어구이지만 사실은 여러 생각이 나도록 고안된 말입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 어눌하면서도 어색하기만한 그런 상태는 곧잘 실없는 웃음으로 터지게 마련입니다.
이런 웃음이라도 자주 터지게 살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런 웃음조차 틀 수 없는 환경이라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미국의 정치가이자 문필가였던‘벤자민 플랭클린’은 행복해지기 위한 두 가지 길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하나는 욕망을 줄이거나 또 하나는 소유물을 늘리거나 하면 되는데, 사실은 그 어느 것도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따라서 행동하시고 또 얼마나 행복하시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흔히들 행복은 정신의 만족감이라고 합니다.
정신의 만족감은 욕망을 달성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만족감이라는 것은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끝내는 욕심을 부리곤 합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욕망과 욕심은 차원이 다른 개념입니다.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는 욕망이란 자기를 알아가면서 다른 대상들과 소통하며,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인간행위의 실제입니다.
그러면 욕심내지 않으면서 행복을 느낀 이가 있을까요. 우선 두 분을 감히 거론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스님입니다.
물론 이 두 분은 결코 함께해서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이 두 분은 결국 한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민중을 위해서는 한없이 베풀고 헌신하시면서도, 스스로에게 먼저 엄격하고 검박하신 정신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삶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실현시키려는 끊임없는 정진도 역시 같습니다. 그래서 근년 들어 제가 보았던 분들 중에서 이 두 분은 분명 행복하셨을 거라는 생각만은 확실합니다.
두 분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두 분처럼 남을 위해 기도하면서까지 살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서질 않습니다. 오히려 모난 흠집들만 도드라지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행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대신 행복의 대소나 경중을 구분해서 과욕을 삼가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동양철학의 거두인‘노자’는“만족할 줄 알면 욕되는 일이 없고, 머무를 줄 알면 위험에 빠지는 일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자족과 자제를 당부하는 말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경쟁에 허덕이며 갈등하는 꼴은 바로 과도한 욕심내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줄이고 다양한 욕망으로 늘 새롭게 행복했으면 합니다. 덧붙여 감히 말씀드리면, 우리가 두 분의 행복을 흉내만이라도 내면서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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