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난중일기를 통해서 본 이순신과 해남
이순신, 지금의 해남군청서 잠을 자고 임금께 예를 올리다
박영자 기자  |  hpak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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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22  15: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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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6년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지자 이순신은 전라도를 순시하며 다시 올 전쟁을 대비한다. 이때 6일간 해남을 순시하는데 지금의 군청자리인 해남현청에서 이틀간 잠을 자고 임금에게 망궐례를 올린다.

[난중일기를 통해서 본 이순신과 해남 - ②1596년 8월25일~9월1일까지 해남여정]

명량해전 1년 전 이순신 6일간 해남 순시
우수영 태평정서 4일 머무르며 잠을 자다
북평면 이진과 황산면 남리서 점심을 먹다

명량대첩이 일어나기 1년 전, 이순신은 해남현과 문내 우수영을 찾았다. 지금의 해남군청 터에서 이틀 잠을 자고 우수영서 4일간 머무른다. 우수영에 머문 기간 그는 명량의 물살을 눈여겨보았을까. 그때만 해도 1년 후 한 나라의 운명이 걸린 해전이 이곳에서 벌어질 줄 그도 몰랐을 것이다.
난중일기에는 명량대첩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6년 8월 윤달 6일간 해남을 순시한 기록이 일정별로 나와 있다. 도체찰사 이원익과 전라도 일대를 순시할 때이다. 
이때는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진 시기이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은 옥포와 한산도 등 숱한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패하고 육지에선 전라도 의병들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자 서서히 퇴각을 한다. 1595년 이후 전쟁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이순신은 둔전을 개간해 군량미를 확보하고 군사훈련을 계속하는 한편 다음해인 1596년 전라도 일대를 순시하며 다시 일어날 전쟁을 대비한다.

이순신, 북평 이진서 점심을 먹다

1596년 윤달 8월, 이순신은 광양, 구례, 장흥에 이어 22일 강진 병영에 이른다. 이곳에서 이순신은 원균을 만나 밤이 깊어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난중일기 곳곳에 원균에 대한 원망의 글을 썼던 이순신, 이때 이순신은 원균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다음다음날인 24일 난중일기에도 ‘원균이 흉한 짓을 하였으나 여기에 적지 않겠다’고 이순신은 적고 있다.
이순신은 다음날 25일 강진 병영을 출발해 북평면 이진에 이르러 점심을 먹는다.
난중일기 기록에 의하면 이순신은 이진을 두 번 왔다. 이때가 첫 번째 방문이었고 두 번째 방문은 1년 후인 1597년 8월20일이다. 이때 이순신은 토사곽란으로 인사불성이 될 만큼 아파 이진서 4일을 묵는다.
북평 이진에서 점심을 먹은 이순신은 말을 타고 해남현으로 이동한다. 이때의 난중일기에는 ‘해남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는데 김경록이 술을 가지고 보러왔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횃불을 들고 길을 갔다. 밤 10시경에 해남현에 도착했다’ 이순신은 북평 이진에서 지금의 해남읍 사이 어디쯤에선가 술을 마시다 밤늦게야 해남현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술을 자주 마셨다. 난중일기에만 술 마신 기록이 140여회나 나온다. 나라에 대한 걱정과 울분, 가족 걱정, 원균에 대한 미움, 민초의 참상 등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이순신이었다. 그래서 술로 시름을 달래려 했던 것일까.

이순신, 현 군청에서 잠을 자다

이진에서 출발한 이순신이 해남현으로 들어왔던 길은 북평 남창에서 현산, 화산을 거쳐 지금의 해남읍으로 들어왔던 걸로 추정된다. 당시 해남읍성을 들어오는 길목엔 녹산역이 있었다. 지금의 읍 신안리에 있었던 녹산역은 읍성을 들어오는 통제소 역할을 했다. 신안리에서 읍성으로 들어오는 길인 읍 평동 오거리인 지금의 축협건물 앞이 말에서 내려 읍성까지 걸어갔다는 하마비터다. 이순신도 이 길을 통해 읍성으로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의 군청 터에 있던 현청의 객사에서 하루를 묵는다.

   
▲ 이순신이 4일간 머물렀던 우수영 태평정 터. 우수영 선창가에 위치했던 태평정은 사라져버렸지만 당시는 2층 누각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도 터 인근에 기왓장이 남아있다. 4일간 이곳에서 체류했던 이순신은 명량의 회오리 물살과 그곳의 지형을 살폈을 것이다.

이순신, 우수영 태평정서 머무르다

해남현에서 하루를 묵은 이순신은 다음날 우수영으로 향한다. 읍에서 우수영까지의 길은 황산면 남리역을 거처 가는 길이다. 난중일기에는 ‘26일 아침 일찍 떠나 우수영에 이르렀다. 태평정에서 자면서 우후 이연충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순신은 다음날 27일 진도 순시에서 돌아온 도체찰사 이원익과 우수영에서 만난다. 당시 이순신과 전라도 순시에 나섰던 도체찰사(전시 때 군사 총지휘관) 이원익은 이후 이순신이 역모죄로 옥에 갇힐 때 정탁과 함께 앞장서서 이순신을 옹호했던 인물이다. 그 덕에 이순신은 죽음을 면하고 백의종군하게 된다.
28일까지 4일간 우수영에서 체류했던 이순신은 명량의 회오리 물살과 그곳의 지형을 살폈을 것이다.
난중일기를 보면 명량대첩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이 문내 우수영에 왔던 기록은 이때뿐이다.
물론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1591년 2월 진도 군수로 발령받는다. 그러나 발령은 곧 취소되고 강진 가리포 첨사로 발령받아 우수영에 와 보진 못한다.  

이순신, 황산 남리서 점심을 먹다

4일간 우수영에서 체류했던 이순신은 29일 새벽에 출발해 이른 아침 황산면에 위치한 남리역에 이르러 점심을 먹는다.
남리역은 관리들이 우수영이나 진도 삼지원, 화원 목장 등을 가기 위해 들렀던 곳이다. 이곳은 말을 갈아타거나 말에게 먹을 것을 먹이며 쉬었던 곳이다. 위치는 황산초등학교에서 진도쪽 방면의 황산 우회도로가 만나는 지점이다.
남리역에서 점심을 먹은 이순신은 지금의 군청인 해남현 청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9월1일 새벽에 망궐례를 올린다. 망궐례란 직접 왕을 배알할 수 없는 지방 근무관리나 파견된 관리가 왕의 상징이 새겨진 패 앞에서 매월 1일과 15일 행하는 의식이다. 이순신은 9월1일 새벽에 지금의 해남군청 터에서 선조인 임금을 향해 예를 올렸던 것이다. 

지금의 군청서 임금에게 예를 올리다

이순신은 새벽에 망궐례를 올린 후 이른 아침 강진 성전으로 향한다. 해남현에서 강진 성전으로 향하는 길은 읍 신안리에 위치한 녹산역을 거쳐 계곡면 성진에 있던 별진역을 거처 가는 길이다. 지금의 길과 많은 차이가 나지 않지만 읍에서 옥천까지의 길은 우슬재가 아닌 읍 신안리에서 옥천면으로 향하는 옛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해남에는 3개의 역이 존재했다. 계곡면 성진에 있던 별진역, 해남읍 신안리 녹산역, 황산 남리의 남리역이었다. 이순신은 해남순시 때 이 모든 역을 거쳤을 것으로 보인다.
해남을 떠난 이순신은 강진 성전에서 점심을 먹고 영암과 나주, 영암, 함평, 순천으로 이어지는 전라도 순시를 계속 이어간다. 
이때의 난중일기에는 해남 민초들의 참상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이때만 해도 해남은 그런데도 전쟁의 피해로부터 안전할 때이다. 그러나 2차 전쟁인 정유재란 시기에 해남도 초토화가 된다. 해남 곳곳이 불이 타 버렸다는 참상이 난중일기에 나오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무관생활 22년 중 절반을 전라도에서 보냈다. 전남지역의 섬과 연해안은 물론 육지에도 이순신의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해남도 마찬가지다. 명량대첩 전후에는 해남 바다를 누볐고 명량대첩 발생 1년 여 전, 전라도 순시 때는 말을 타고 해남 땅을 누볐다.
해남을 비롯한 전라도 순시를 마친 다음해인 1597년 2월, 이순신은 옥에 갇힌다. 그리고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 1597년 8월4일 전라도를 다시 찾고 그해 8월20일 다시 북평 이진에 이른다. 그로부터 26일 후 명량해전이 일어난다. 

   
▲ 울돌목 이순신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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