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초제 판소리 수궁가에서 별주부가 처음 육지에 당도해 토끼와 범을 만난 장소가 화산면 관두리라는 이야기가 전한다.(화산면 관동마을 전경)
동초제 판소리 수궁가에서 별주부가 처음 육지에 당도해 토끼와 범을 만난 장소가 화산면 관두리라는 이야기가 전한다.(화산면 관동마을 전경)

 

 다산을 상징하는 토끼는 생태계 최하층에 속해 있지만 지혜의 상징동물로 여겨진다. 민화와 동화 등에 자주 등장하는 토끼, 판소리 수궁가에선 자신의 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토끼로 분장한다. 
그런데 동초제 수궁가 대목 중 등장하는 해남 관머리가 화산면 관동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별주부(자라)가 용궁을 나와 머나먼 이역만리 바다를 헤엄쳐 도착한 육지의 이름이 화산 관머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토끼가 자라에게 꾀임을 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토끼해인 계묘년, 수궁가에 등장하는 천방지축 해남토끼를 만나보자. 

병든 용왕이 수궁 대신들을 모두 불러모아 이르길, “경들 중 누가 세상에 나가 토끼를 구해 짐의 병을 구할소냐?” 하니, 목과 다리가 짧디짧고 등에 방패를 지고 앙금앙금 기는 자라가 나선다. 이에 용왕이 “충심은 지극하나 세상에 나가면 진미가 될 것인데 내 어찌 너를 보내고 안심할소냐”. 이에 “별주부 이르길, 강산에 높이 떠서 망보기를 잘하오니 무슨 일이 있사오리까. 토끼 화상이나 그려주옵소서”

그리고 목을 길게 빼고 목덜미에 토끼 화상을 턱 붙인 후 목을 움츠리니 물 한방울 들어올 틈이 없겠더라. 
별주부, 울부짖는 가족 뒤로하고 세상 밖으로 나와보니 그곳이 화산면 관머리라. 주변을 살펴보니 온갖 짐승들 다 모여 상좌다툼을 허는디. 
그중 토끼란 놈이 껑충 뛰어 나앉더니마는, 자네들 내 나이 들어보소, 한나라 광무 시절 간의대부(諫議大夫) 마다하고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으로 차일 삼고 동강의 칠리탄에 낚시줄 감아 놓고 시조 읊은 엄자릉(광무제 친구로 벼슬을 멀리하고 동강에서 평생 낚시를 즐김)과 동갑이니 내가 상좌를 못허겄나.

그때 별주부, 목에서 화상을 꺼내 비교해보니 영락없는 토끼더라. 
“저기 퇴생원 아니오?” 이에 토끼가 좋아라며 깡짱 뛰어나오며 “거 뉘가 날 찾나? 날 찾을 리가 없겄마는 거 누가 날 찾어”라며 요리 깡충 저리 깡충 짜웃둥 거리며 내려온다.

토끼를 마주한 별주부 “아닌게 아니라 잘났소 잘났어, 이 세상에서 몰라 그렇지 우리 수궁 들어가면 훈련대장 하실 거고, 미인미색 밤낮으로 동락할 것이니 그 아니좋소?” 또 “불로초 불사약을 취토록 먹을 수 있는 수궁을 알았다면 적벽강 소자첨과 채석강 이태백이 이 세상에 왜 있었으리, 병약하던 진시황과 한무제도 이런 재미 알았으면 이 세상 있을 손가”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
감언이설에 속은 토끼 깡충되며 별주부를 따라가는데, 이때 건너 산 바위틈에 여우란 놈이 나타나 “여봐라 토끼야, 칼 잘 쓰는 위나라 형가(진시왕 암살시도 인물)는 역수한파(易水寒波)에 슬픈 소리로 남아있고 항우 초희왕도 진무관에서 다시 오지 못하였거늘. 가지마라 가지마라 수궁이라 하는 데는 한번 가면 못 오느니 가지마라” 한다.
이에 깜짝 놀란 토끼, “우리 여우사촌 아니었더라면 큰일 날뻔했소. 내가 저 물속에 들어가 용왕이 된단들 못가겠소” 
이에 별주부 이르길 “수궁천리 멀다만은 맹자도 불원천리 양혜왕을 찾아갔고 위수 어부 강태공도 문왕 따라 입궁하고 황면장군 한신도 소하따라 대장되었으니 퇴서방도 나를 따라 가면 좋은 벼슬할 것이니 염려 말고 갑시다” 한다.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범도 해남 범이래요

 수궁가 대목 중 별주부가 화산 관두리에서 범을 만난 장면은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로 재창작됐다. 별주부가 화산 관머리에 도착해 토끼를 대면하기 전 먼저 해남 범을 만났다.

온갖 동물들이 모여 상좌자리를 놓고 한참이나 노릴 적에 별주부의 눈에 토끼가 들어왔다. 
너무도 반가웠던 별주부 “저기 앉은 게 토생원이오?”라고 부른다는 것이 그만, 저기 호생원 아니오?”. 수만리 바다를 아래턱으로 밀고 나온 바람에 아래턱이 뻣뻣해져 ‘토’ 자를 ‘호’ 자로 잘못 부른 것이다.  
첩첩산중에만 살았던 호랑이 생원 말 듣기는 처음인지라 반겨 듣고 내려오는디.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승이 내려온다. 쇠낫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 산천이 뒤덮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이에 자라 정신없이 목을 움츠리고, 자라를 본 호랑이는 덥석 잡아먹으려 한다. 기가 막힌 별주부, 호랑이 앞으로 바짝 기어들어가 호랑이 불알을 꽉 물고 뺑뺑 도니 호랑이가 너무 아파 의주 압록강까지 냅다 도망을 했것다.

호랑이가 도망치자 별주부 말하길 “아따! 그놈 참 용맹 무서운 놈이로다. 나나 되니까 여기까지 살아왔지 다른 놈 같으면 영락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별주부, 호랑이를 쫓은 후 곰곰이 생가해 보니 “호랭이라 허는 것은 산중의 영물이라 내 눈에 와서 보였을 것이다”며 목욕재계하고 산신제를 지낸다. 
“유세차(維歲次), 남해 수궁 별주부 자라 일월성신 신령전에 지성으로 비나이다. 용왕이 득병하야 토끼 간을 구하오니 중산토끼 한 마리 허급(許給) 허옵심을 상사 상향(常事尙饗).”

한편 화산면 관동리 옛 지명은 관두리 또는 관머리였다. 마한시대부터 국제항이었던 이곳은  고려시대에도 중국과 관무역을 했고 또 관동마을에선 10년 전까지 마을 뒷산 중턱에서 용왕제를 지냈다. 혹 별주부가 토끼 간을 구해달라고 산신제를 지냈던 그 터에서 용왕제가 이어지지는 않았을까. 
수궁가에서 별주부가 처음 육지에 도착해 만난 토끼와 범, 토끼는 대표적으로 약자, 호랑이는 강자로 대별된다. 그러나 토끼는 다산과 풍요, 지혜와 민첩함을, 호랑이는 용맹함을 상징한다. 재미있는 콘텐츠 개발이 무궁무진한 소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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