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조합 장례지도사 김정민 실장
해남에서 가장 젊지만 30년 외길

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산림조합 장례식장 김정민 장례지도사는 자신의 일은 떠나는 이에 대한 마지막 예우라고 말한다.

 

 삶은 그 자체가 가치다. 가치를 내려놓고 떠나는 이들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이, 장례지도사이다. 매일 죽음과 대면하는 직업, 그 누구나 한때 가치 있는 삶을 살았기에 그들을 정중하게 보내드리는 업무 또한 장례지도사의 일이다.
해남군산림조합 장례식장에서 근무하는 김정민(48) 실장의 직업도 장례지도사다. 해남에서 가장 젊은 장례지도사이지만 경력만 놓고 보면 30년 가까운 베테랑이다. 

 지금은 장례지도사라는 명칭으로 불리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름이다. 이전에는 장의사라 불렸고 더 이전에는 ‘염쟁이’라고 낮춰 불렀다. 모두들 떠나야 하는 삶인데도 시신은 언제나 무섭고 피하고 싶은 존재였기에 시신을 다루는 직업 또한 낮춰 불렀다.

 김 실장은 “과거엔 확실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제는 대학에서 전문학과가 생기고 많은 청년들이 도전하는 직업으로 변모했다. 또 의사도 소방관도 매일 죽음을 목도 한다. 다만 우리는 고인과 고인의 가족이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이별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점에서만 다를 뿐이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19살 때 처음 염을 대했다. 그때는 단순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했다. 집안 친척이 장의사로 있어 용돈 벌이를 할 겸 시작한 일이었다. 또 당시에는 고인의 집에서 장례를 치렀기 때문에 대부분 출장 형태였다. 염습 또한 북측 창이 뚫린 안방이나 작은방에서 행해졌고, 대부분 고인의 가족들이 지켜보거나 가족과 함께 염습이 진행됐다. 
하지만 장례식장이 생기고 염이 독자적인 영역으로 자리잡으면서 염습에서 입관까지 모두 장례지도사의 손을 거치게 됐다. 
김 실장이 본격적으로 장례지도사를 직업으로 결정할 때, 주변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김 실장은 “장의사를 직업으로 삼는다는 말에 부모님은 떳떳한 직업이 아니란 생각과 지인에게 자식 직업을 밝히기도 부담이 컸던지 만류하는 분위기였다”고 회상했다.

 30년 가까이 종사해온 직업, 시간이 축적되는 동안 그의 직업의식도 커갔다. 죽음에 대한 경건함, 그의 손길은 마지막 떠나는 이에 대한 예우의 염이란 걸 그는 안다.
오늘도 그는 죽음을 마주한다. 그 죽음도 한때 찬란한 삶이 있었고 빛나는 한때가 있었음을. 호상은 호상대로, 안타까운 죽음은 또 안타까운 죽음대로, 이승과의 마지막 이별을 경건히 보내야 하는 직업. 시신의 몸을 치장하고 또 화장장으로 보내고 유골함을 유족에게 전하는 모든 순간이 그의 몫이다. 

 그는 최근 젊은 장례지도사가 많이 배출되고 있다. 지금은 경영, 유족 심리상담, 갈등 관리, 장례지도 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으로까지 확대됐다. 전문성이 더욱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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