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내면 오히라기요미씨
마지막 길도 곁에서

문내면 요양보호사 오히라기요미씨(사진 오른쪽)는 처음 재가요양을 시작해 지금껏 6년을 동리마을 김수웅 어르신을 돌보고 있다. 
문내면 요양보호사 오히라기요미씨(사진 오른쪽)는 처음 재가요양을 시작해 지금껏 6년을 동리마을 김수웅 어르신을 돌보고 있다. 

 

 해남노령화 인구 36%. 삶을 마감할 때도, 요양원으로 가기 전까지도 그의 곁에 있는 이는 재가 요양보호사다. 특히 독거노인이 늘고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요양보호사는 가족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또 다문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요양보호사에 다문화여성의 진입도 늘고 있다. 노인 돌봄만큼은 국적을 초월한다.
문내면 소망장기요양센터 요양보호사 오히라기요미(52)씨, 그는 오늘도 그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대상자 댁을 찾는다.
“아따 아버지 이쪽 조심하셔야 쓰것어” 40년 넘게 와상으로 계신 어르신의 욕창 부위를 소독하며 걱정스러운 말을 더한다. 

 26년 전 결혼해 한국으로 이주한 오히라기요미씨는 일본인이다. 그동안 농사, 김치공장 등에서 일을 했고 우연히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일본인 소개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노인인구가 증가하면서 노인요양시설, 재가복지기관에 근무하는 다문화 요양보호사도 꾸준히 늘고 있다.
오히라기요미씨는 문내면에서 매일 4명의 대상자를 요양보호 하는데, 그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임이 가능한 어르신들이다. 거동이 불편해 침대에서만 생활하는 어르신, 보조기에 지탱해 걸음을 걷는 어르신은 오히라기요미씨의 방문이 세상과의 만남이다. 

 보통 한 대상자당 약 2시간의 요양보호를 하는데, 집안 정리와 세안, 목욕, 청소, 병원 방문, 걷기운동 등을 돕는다. 또 반찬을 한두 가지씩 만들어 식사도 챙긴다. 어르신들의 다양한 심부름까지, 요양보호 이상의 일을 하고 있다. 
2014년부터 요양보호 일을 시작한 오히라기요미씨는 처음 5년은 산이면 노인요양시설에서 근무했고, 이때 어르신 목욕, 양치, 어르신들이 식사 반찬으로 무얼 좋아하는지 배웠다. 

 2019년부터는 재가요양을 하며 더 가까이 돌봄을 해왔다. 아이 4명을 키우면서 일을 하기 때문에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시간을 유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가요양이 더 잘 맞았다. 
처음 재가요양을 시작한 후 6년을 함께 하는 어르신도 있다. 오히라기요미씨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랑 같이 살았고, 시부모님도 생전에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을 대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에 부담이 적다.
오히라기요미씨는 이제는 일본에서 살았던 날보다 한국에서 산 날이 더 길다. “내가 한국어를 안 배우고 와서 지금도 발음이 안 좋아요”라고 하지만 잘 느껴지지 않는다. 반찬을 만드는 솜씨도 수준급이다. 

 문내면 동리마을 김수웅(84) 어르신은 오히라기요미씨를 친딸처럼 고맙게 생각한다. 
김수웅 어르신은 “우리 식구라 생각하고 고맙지. 내가 솔찬히 까랍거든. 까래도 딸 같이 아주 잘해. 일본에서 와서 고생도 하고 말도 못 하게 착해”라며 칭찬을 늘어놓는다.
아내 양영자(81) 어르신도 “이쁘지. 모르는 게 없이 영리하고 딱 이런 며느리가 있으면 좋겠어”라며 칭찬을 더한다. 
요양보호사는 어르신의 삶을 가까이에서 돌보면서 예정치 못한 이별, 임종을 지켜보기도 한다. 그동안 2명의 어르신을 눈앞에서 보내드렸다. 심폐소생술을 했고, 가족을 대신해 119에 연락을, 또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그는 어르신 두 분과 이별을 하며 마음도 아프고 슬픔이 있었다. 
오히라기요미씨는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니 감사하다. 나를 필요로 해주고,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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