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김태정 시인의 영전에 바치는 연가
해남우리신문  |  wonmok76@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1.09.27  11:46:52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삶이란 것이 얄궂기도 하여라. 떠나간 언니를 그리워하며 내가 이런 편지를 쓸 줄이야. “언니!”하고 불러놓고 나는 목 놓아 우네. “태정언니!” 거푸 불러도 대답은 없고, 먹먹한 가슴에 그리움만 밀려오네.
“관순씨!” 하고 평소처럼 한 번만 불러주지. 100미터 저 밖에 서 있어도 좋으니 그냥 한 번 웃어나 주지. 그도 싫으면 멀리 걸어가는 언니 뒷모습이라도 한 번 보게 해주지. 따뜻한 온기 감도는 손 잡아보고픈 건 과한 욕심인가! 어쩜 이 세상에 있던 언니 흔적마저 온전히 거두어 갈 수가 있어? 내가 이렇게 언니 보고 싶어 하는데 한번쯤 꿈속에라도 찾아와 주면 안 돼?
김태정. 검박한 살림 꾸리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시인. 해남에 터 잡고 산 7년을 가장 행복했다 말한 여인. 1년 남짓 암을 안고 투병하다 49년 짧은 삶을 마감한 나의 언니.
응급실에 누워있는 언니를 안고 좋아한다고 고백 했지. 2주밖에 못산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내가 왜 언니를 좋아했을까? 언니는 ‘못난 것들은 지들끼리 얼굴만 봐도 좋다.’는 시 구절을 빌려 설명하곤 했지. 그래 맞아. 언니가 못나서 좋았어. 구멍 난 양말에 낡은 털신 신은 모습이 좋았어. 화장기 없는 맨 얼굴도 좋았고, 순한 기운만 가득한 눈동자를 쳐다보는 것도 마냥 좋았어.
타자기나 다름없는 노트북을 매만지며 ‘글 쓰는데 이거면 충분해.’하던 소박함도 좋았고. 이 빠진 잔에 타 온 커피를 ‘이가 빠졌네.’하며 내밀던 언니 말투도 좋았어.
내가 미황사 사무장이었을 때 괘불재 행사로 퇴근을 못하고 절에서 자야할 때가 있었지. 밤 12시가 넘은 시간 연락도 없이 언니 집에 쳐들어갔잖아. 흔쾌히 웃는 낯으로 맞아준 언니.
새벽에 일어나 절에 가려고 주섬주섬 챙기니 언니가 콩물 한 잔을 내밀었지. 곤한 잠 자야할 시간에 일어나 나를 위해 만들어준 콩물 한잔. 근데 충분히 불리지 않은데다 믹서에 제대로 갈리지도 않았어. 제대로 삶아지지 않아 비린내는 또 얼마나 심하던지. 내가 마신 건 콩물이 아니라 언니의 정성이었어. 온전히 나를 염려하며 만들어준 귀한 거였잖아. 언니 하면 지금도 그때 콩물이 생각나.
언니를 만나면 늘 시간이 모자랐어. 말수 적은 우리 두 사람이 무슨 할 말이 그리 많다고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 나누다보면 몇 시간 쯤 화살을 타고 날아갔지. 언니처럼 죽이 잘 맞는 이야기 상대를 내가 또 만날 수 있을까 싶다.
미황사 아름드리 동백나무 아래 잠든 언니. 살아서 사무치게 좋아했던 곳에 안식을 얻었네 그려. 앞으로 내 앞에 피는 동백꽃은 예사로운 꽃은 아니겠지.
언니와 내가 이번 생에 만난 건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말한 적 있지? 한 물이 다른 물을 만나 함께 흘러가듯 언니와 만남도, 이후의 인연도 자연스러웠던 걸 보면 필시 운명이었던 것 같아. 단박에 알아보고 ‘절친’이 되었던 이번 생처럼 그렇게 또 언니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어. 그때도 멋진 여자 친구로 만나자 약속했지? 언니가 동생하고, 내가 언니하기로 했던가? 함께 여행가기로 한 마지막 약속 못 지켰으니 그땐 바람처럼 세상을 떠돌아다니자. 그때까지 안녕. 내가 가장 사랑했던 태정언니.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전남 해남군 해남읍 군청길 5  |  대표전화 : 061)536-2100  |  팩스 : 061)536-2300
등록번호 : 전남-다-00287  |  등록일 : 2009년 12월 21일  |  발행인 : 박영자  |  편집인 : 박영자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아름
Copyright © 2019 해남우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534023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