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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에게 동정의 눈길로 다가와 시온을 보살펴 주는 여의사 차윤서에게 시온은 시나브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차윤서도 시온이에게서 봄에 피어나는 새싹과도 같은 순수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둘은 서로 서투른 사랑고백을 합니다. 그 사랑 고백의 내용들이 참 재미있고 진솔해서 사랑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내 가슴이 쿵쾅 쿵쾅 쿵쾅거려요”
“제 혈관이 보일러 호스처럼 뜨거워진 것 같습니다. 제 심장 안에서 누가 드럼을 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언어화 한다던가 도식화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단어인 것 같습니다. 첫눈에 반한 어떤 사랑도 사랑이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혼자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랑도 사랑입니다. 그러나 삶의 경륜을 통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사랑이란 가슴의 움직임이요 아름다우면서도 아픈 것이라는 것을 애타보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워보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금년도 명량대첩축제를 보내며 김훈의 장편소설「칼의 노래」와「난중일기」를 다시 펼쳐 보았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의 사랑이야기를 드라마처럼 다시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이순신에게 있어 칼은 사랑이었습니다.
한산도 야음이라는 시입니다.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못드는 밤, 새벽 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새벽달이 하필이면 칼을 비춥니다. 그가 칼을 보며 고심하는 조국애가 진하게 묻어 있습니다. 그의 칼은 조국 때문에 늘 울었습니다. 적의(敵意)는 바다에 팽팽한데 함대가 없어 울었습니다. 오직 전과를 올리기 위해 아군이 아군의 수급을 베는 아비규환 속에서, 캄캄한 바다가 인광으로 뒤채이는 상황에서 이순신의 칼은 울었습니다. 우수영에 남은 고작 13척의 배를 바라보며 그의 칼은 울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적이 몰려오고 헤아릴 수 없는 적이 죽었건만 ‘적이 적인가?’라고 표현할 만큼 위태로운 정치 상황 속에서도 그의 칼만은 적을 분명히 노리고 울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칼은 쇠비린내와 피비린내를 진하게 풍겼습니다. 쑥대밭처럼 변해버린 산하와 마을마다 풍기는 피비린내를 맡으며 그는 울었습니다. 정유년 여름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 수군 연합 함대가 거제도 북쪽 칠전량 전투에서 전멸한 후 ‘통제할 수군이 없는 수군 통제사’의 교지를 받으며 그는 울었을 것입니다. 신의 몸이 아직 살아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이란 심연(深淵)의 울음이기도 합니다. 그의 울음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라는 기치(旗幟)로 그의 칼은 명량에 섰던 것입니다.
이순신의 나라사랑 이야기를 다시 읽으며 시끄러움이 끊이지 않는 조국의 현실을 생각해 봅니다.
나는 정치에 아둔하고 문외한입니다. 하지만 국민들 앞에서 거짓 사랑을 노래한 이들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가슴이 뛰지도 않으면서 사랑을 고백한 이들을 많이도 보았습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할 것을 구분하지도 못한 이들을 보았습니다. 평상시 행태처럼 그것을 정치행위라 무마시킬지라도 역사는 진실을 남기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랑한다는 고백만은 거짓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저런 일들이 실망스럽고 거짓으로 드러나는 지금, 또 드러날 일들과 그 날들이 너무 많이 남았기에… 나라를 사랑한 이순신의 칼의 노래가 가슴을 찢는 사랑 이야기 되어 가슴을 달구는지 모르겠습니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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