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중 교장 퇴임 후 마을 활동가 변신
백호마을, 소란스럽지 않은 조용한 변화
주민들 간 온기가 식지 않은 옥천면 백호마을, 이 마을의 청년회장은 윤채현(64) 전 두륜중학교 교장이다. 30년 넘도록 맡은 청년회장. 그는 자신을 “마을 활동가로 다시 출발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윤 청년회장은 태어난 순간부터 백호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 완도 노화도, 강진교육청, 해남고등학교 등 수십 년간 교직을 옮겨 다녔지만, 출근은 언제나 마을에서 했다.
마을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도 단단해졌다.
그는 1996년, 나이 35살에 백호 청년회를 만들었다. 당시 마을은 논을 사들여 회관을 짓던 참이었고, 윤 회장을 비롯한 5명의 또래들은 “회관을 관리할 젊은 손이 필요하다”는 어르신들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청년회를 결성했다.
마을회관 전기료와 보일러 기름값을 청년회에서 부담했고, 명절이면 객지 향우까지 불러 대청년회를 꾸렸다. 지금은 ‘청장년회’로 바뀌었지만 지금도 15명이 함께 움직이며 마을의 운영·관리·봉사 대부분을 맡고 있다.
이들이 만든 변화는 작지 않다. 몇 해 전에는 마을 공터에 둘레길을 냈고, 올해는 황토를 깔아 맨발산책로로 새로 단장했다. 발 씻는 곳도 마련해 놓으니 아침저녁으로 주민들이 걷는 길이 됐다.
회관 옆에는 문화복지 공간이 생겼다. 백호문화복지관에선 첫 교육으로 양성평등 교육을 열었고 건강프로그램, 난타와 탁구 활동까지 이어지며 마을의 중심이 되고 있다.
윤 회장이 은퇴 후 가장 먼저 준비한 일은 ‘공동급식’이었다. 독거노인이 늘고 식사를 챙기기 어려운 어르신들이 많다는 생각에서이다.
이를 위해 회관 뒤편의 주방을 넓히고, 하루 40~50명까지 급식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20명으로 구성된 비영리단체 ‘함께 더존 백호’를 설립했다. 앞으로 공모사업을 통해 마을 프로그램, 식사 지원, 환경정비를 이어갈 계획이란다.
그는 주민자치회 참여 등 여러 모임에서의 외출 요청이 잇따르지만 “마을 활동이 우선”이라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직함보다 중요한 건 백호마을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기때문이다.
백호마을은 인구가 줄었다. 한때 100가구가 넘던 마을이 40~50가구로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빈집은 다른 면에 비해 적고, 귀촌·귀농한 이들이 늘면서 예쁜 집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샘물이 흐르는 집, 대나무숲을 걷어내 새로 손질한 길, 누군가 매일 청소해두는 우물 등.
윤 회장은 “백호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남아 있는 마을”이라고 말한다.
산비탈 곳곳에 고인돌이 이어지고, 오래된 교회 종소리가 하루를 여는 마을. 그리고 매월 첫째 주 토요일이면 청장년회 회원들이 모여 마을을 돌보고 함께 걷는다.
윤 회장은 “은퇴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말한다. 마을은 그의 발걸음을 따라 조금씩 달라졌고, 그 변화는 소란스럽지 않지만 단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