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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의 안산인 금강산 산책로는 힐링로드(Healing road)입니다. 숲이 풍겨내는 향기, 물이 바위 사이를 휘돌아치며 만들어 내는 소리, 바람이 골을 헤집으며 달려가는 소리와 산새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이름 모를 꽃들이 품어내는 향 내음이 어우러진 길을 무심히 걷노라면 가슴이 열립니다. 때론 생각이 열리기도 합니다. 그 길에는 ‘오우가’처럼 하늘과 산과 바위와 숲 그리고 새들과 꽃이 오케스트라의 하모니처럼 어우러져 있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길가의 작은 꽃 한 송이를 찬찬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꽃 이름은 모르지만 올망졸망한 꽃의 매무새와 사람의 손길로는 도저히 다듬어내지 못할 색깔의 조화로움은 아름답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이름 모를 저 작은 꽃 한 송이도 꽃을 피워내기 위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미세한 몸짓을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저처럼 아름다운 색깔을 수놓았을 것입니다. 꽃을 피워내기까지 힘겨웠을 것입니다.
괴테는 색채는 빛의 고통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시인 정호승 님이 빛의 고통에 대해 표현한 말을 빌립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산과 바다가 산과 바다의 색깔을 내듯이, 꽃과 노을이 꽃과 노을의 색깔을 내는 것이 모두 빛의 고통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들이 빛의 고통이 없으면 제 색깔을 낼 수 없듯이, 이 세상을 사는 우리도 고통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만물이 색채를 지닌다는 것은 바로 고통의 빛이 있다는 증거이며, 제 삶에 고통이 있다는 것은 바로 제가 인간으로서 건강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증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뭄으로 물 한방울 없었던 바위투성이인 골에서 어떻게 생명을 유지했는지 다시 꼬리를 흔들어 대는 작은 물고기들의 질기디 질긴 생명력은 미물에게도 타고난 지혜가 숨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작은 물고기들에게도 고통의 시간은 있었을 것입니다. 물없는 사막처럼 메마른 골에서 생명력을 유지해 내기 위한 몸부림은 얼마나 치열했을까요?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바위를 힘을 모두어 오르는 담쟁이를 봅니다. 벽처럼 높고 거친 바위를 온 힘을 다해 오르는 담쟁이를 보며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를 되뇌입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힘들지 않는 세상이 어디 있으리오.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벽 앞에 서보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으리오. 살다보면 희망은 보이지 않고 절망이라고 생각을 해보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으리오. 빛에도 고통이 있듯이 인생에도 작은 동물의 날갯짓에도 잡풀 하나의 몸짓에도 고통은 있답니다.
요즘 세상살이가 참으로 불투명하고 퍽퍽하게만 느껴집니다. 날마다 고통스러운 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이 보다 아름다운 색깔을 만들어낼 것을 기대합니다. 세상살이 역시 어려움을 이겨내며 담쟁이처럼 손을 잡고 벽을 넘어 피워내야 하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산책로는 힐링로입니다.
다시 일어나 길을 걷습니다. 목청껏 노래를 부릅니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메아리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옵니다.
가슴이 열립니다. 고통을 이겨내고 돌아오는 메아리가 향기를 뿌리고 사라집니다. 메아리가 사는 산이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좋은 메아리는 그런 것, 바람 한 점 없어도 퍼져 나가는 향기! 홀로 가는 길보다는 누군가와 동행하는 길, 그런 길이 힐링로드(Healing road)이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힐링 라이프(Healing Life)가 아닐까요? 하지만 향기에도 고통은 있답니다.
저녁 햇살이 산꽁지막을 아름답게 수놓습니다. 저 아름다움은 빛의 고통이랍니다.
해남우리신문
wonmok7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