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의 새아침이 열린다고 해맞이를 했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무상한 세월이 벌써 한 달여 가까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자잘하게 쪼개져 흩어지면 세월이 되고 세월이 포개지면 시들어 가는 것이 인생일진데 벌써 한 달이 무심히 흩어져 나갔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구나’라는 생각으로 달력을 훑어보니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가물가물한 어릴 적의 설 이야기, 그때 그 시절을 회억(回憶)해 봅니다.
설날이 가까워지면 하냥 좋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침부터 떡국 공장에 빨리 가서 줄을 서야 한다며 부산해 하셨고 어머니를 따라 나선 장터엔 사람들로 북적거려 잔치 분위기에 마음이 들떴습니다.  
설날은, 우선은 세뱃돈이 생기는 날이라서 좋았습니다. 그 날만은 ‘고까’라고도 불렸던 ‘때때옷’ 내지는 새 옷을 입고 평상시와는 다른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설 하루 전일을 섣달그믐날이라고 합니다. 섣달그믐날 밤 인가에서는 방, 마루, 다락, 곳간, 문간, 뒷간에 모두 등잔을 켜놓았습니다. 흰 사기 접시 하나에다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외양간, 변소까지 불을 켜놓아서 마치 대낮같았습니다.
“섣달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굼벵이가 된다”, “섣달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며 할아버지께서는 새벽녘에 닭이 울 때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새해를 맞게 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수세(守歲) 풍습은 섣달 그믐날과 초하루가 연결되어 있어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통과의례로 마지막 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랍니다.
설음식을 세찬(歲饌)이라고 했고 세찬의 대표적인 음식인 떡국을 먹을 때마다 의미도 모를 한 살이 더해졌었죠. 그 날엔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 세배를 드리고 덕담과 함께 건네주시는 ‘복돈’을 세어보는 설레임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슴 설레며, 이웃과 함께 설을 맞이했었는데…
설을 쇨 때마다 한 겹의 나이테가 더해짐과 세월이 살같이 빠름을 알아챈 중정(中情)이 든 뒤로는 설은 나이를 한 살 보태주는 것이 아니요, 남은 나이에서 한 살을 빼앗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세월은 기다려주는 법이 없으니 섣달 그믐날엔 다시 한 번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각오를 새롭게 할 일입니다.
송구영신의 마음으로 다시 지난 한해를 되돌아봅니다. 결코 순탄하지 않은 한해였습니다. 삶의 쟁기질이 점점 더 퍽퍽하다는 느낌이 든 해였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의 정치 놀이에 분통이 터지는 일도 많았습니다.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은 진실을 드려내려 할 때마다 취모구자(吹毛求疵)격 대응방식에 얼마간 꿈틀대다 묻혀버렸습니다.
아들이 사는 서울 집값은 바벨탑처럼 곧 하늘에 닿을 것 같아 쳐다보기조차 힘들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허다했습니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넘어섰는데도 서민의 허리는 펴진 것이 없습니다.  따스한 이야기는 줄어들고 희망의 노래는 시간을 따라 흩어져 갔습니다.
여물지 못한 저의 안목(眼目)으로 볼 때에 국민의 성숙도는 아전인수(我田引水), 감탄고토(甘呑苦吐)격이어서 미숙아(未熟兒)같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몇 장의 달력만 넘기면 설날입니다.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 새로운 시작을 하는 날입니다.
옛 기록을 보면 남녀가 1년간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빗상자 속에 넣었다가 설날, 황혼을 기다려 문 밖에서 태움으로써 나쁜 것을 물리쳤답니다.
다가오는 설을 기다리면서 나쁜 것들을 다 물러가기를 그리고 새해엔 때때옷을 입는 마음으로 마음을 정갈하게 다듬고 희망의 풍선을 띄워보기를 소망합니다.
희망의 아이콘인 청마 해를 맞으며 참으로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각오를 새롭게 합시다. 대나무의 매듭이 대나무를 올곧고 단단하게 세우듯이 청마해의 한 매듭 매듭이 남은 날들을 새롭게 하는 의미 있는 매듭이 되기를…
세배를 하는 마음으로, 덕담(德談)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근하신년(謹賀新年)! 삼가 새해를 축복하옵니다.
설날이 더 서러운 사람들도 있을 터이나 서러움 저 멀리 던져 버리고 청마해에는 어쩌든지 그저 건강하시고 건강하소서! 다복하시고 다복하소서!
계획한 일들마다 성취하시고 건강한 한해 되시기를 두 손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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