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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사랑하여 함께 살았고 소는 사자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소는 최선을 다해 날마다 맛있는 풀을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고기를 먹고 싶었고 풀을 먹는 것이 죽을 정도로 싫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자는 몸이 쇠약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나마 풀이라도 먹는 것에 감사해야 될 상황이었습니다. 사자는 고통의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더 늙고 쇠약해져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소는 죽은 사자 앞에서 말했습니다. “난 최선을 다했어. 난 최선을 다했어.” 소는 자기 눈으로만 사자를 보았고 최선의 방법으로 사자를 대접했습니다. 사자의 입장에서 최선이 아닌 자기에 입장에서 최선, 그 최선이 사자에게는 최악을 낳고 말았습니다.」
노인복지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병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을 자주 접하곤 합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효를 행하는 자녀들이었고, 그런 자녀들을 만날 때면 존경스러운 마음과 아울러 노인복지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요즘같은 시대에 병약한 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효자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효를 다하는 자녀보다는 자녀의 시각과 입장으로 효를 행하는 자녀들을 볼 때면 존경스러운 마음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도 크게 밀려옵니다.
몇 해 전 100세가 다 되어간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70대 아들부부를 만났습니다.
농사를 짓는 70대 아들은 노환과 치매로 인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모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노모는 아들부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오직 아들부부에게만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들부부는 이른 아침 어머니 방에 아침과 점심 두 끼니를 준비해 두고 밖에서 문을 잠군 채 들에 나갔다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습니다.
아들부부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노모는 햇빛도 들지 않고 불도 켜져 있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며느리가 아침에 준비해둔 식사를 하며 홀로 하루를 보냅니다. 물론 TV를 켜지도 못합니다. 문은 밖에서 잠궈 놓아 나갈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아들부부에겐 치매에 걸린 노모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밖에서 문을 잠가놓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사람들이 아들부부에게 권유를 했습니다.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좋은 제도들이 많으니 도움을 받아보라고. 그러면 낮에 사람이 방문해 어머니에게 식사도 준비해주고 함께 대화도 하고 더 잘 보살필 수 있다고 권유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부부는 “내 부모 내가 끝까지 모셔야지. 어떻게 남의 손에 맡기냐? 나를 불효자로 만들 거냐?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모시는 것이 최선의 효다”고 대꾸했습니다.
소가 사자를 사랑하는 방법처럼, 소가 날마다 사자의 입장이 아닌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풀을 사자에게 대접했던 것처럼 아들부부 또한 노모에게 그랬던 것입니다.
몇 년 후 지인을 통해 그 노모가 그렇게 살다가 돌아가셨고, 그 아들부부는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는 공으로 효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노모는 삶의 질을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였겠구나 생각하니 노인복지 향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이 들 뿐이었습니다. 요즘도 소가 사자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부모를 부양하는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노인들의 천국이라 할 만큼 노인복지에 관련된 많은 제도들이 생겨났습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위한 장기요양서비스 및 노인돌봄서비스, 시설입소, 주야간 보호시설 등 여러 가지 사업들이 있어서 어르신을 부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과거에는 노인복지 환경이 좋지 않아 노인의 삶의 질을 논한다는 것은 사치고 꿈이었습니다. 단지 밥 굶지 않고 배부르면 잘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였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밥만 먹고 사는 시대가 아니고 삶의 질을 논하고 추구하고 사는 시대입니다.
노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는 자신의 손으로 모시는 것이 최선의 부모부양이고 효라고 생각했던 시대였다면 지금은 자녀 당사자뿐 아니라 정부의 손을 빌려 효도의 질을 높이고, 부모의 입장에서 삶을 바라보고 보살핀다면 비록 병약하지만 더 낳은 삶의 질과 행복한 노후를 누리며 남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습니다.
자녀 자신의 시각을 버리고 한 번쯤은 부모의 입장에서 효를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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