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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중산층인 리틀 부부는 어느 날 뉴욕 시립 고아원을 방문하여 스튜어트라는 조그맣고 사랑스러운 생쥐를 데려온다.
그러나 리틀씨 집에는 그를 반기지 않는 두 명이 있다.
바로 리틀 부부의 귀여운 아들 조지와 애완 고양이 스노우벨이다.
‘조금은 독특한 종’이라는 입양 담당자의 소개가 있었지만 리틀 가족이 되기에는 장애물이 많다.
스튜어트는 하루 빨리 리틀 가족에게 적응하려고 노력하지만 처음부터 쉽지가 않다.
조지는 스튜어트를 동생으로 여기지 않고 많은 친척들 앞에서 그는 단지 생쥐일 뿐이라고 핀잔을 주며, 고양이 스노우벨 또한 먹이인 생쥐를 주인으로 섬길 수 없다고 당당히 이야기 한다.
이렇게 가족에게 배척당하고 같은 동물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던 스튜어트는 조지의 실수로 세탁기에 들어가 빨래와 함께 돌려지다 가까스로 리틀 부인에게 구조된다.
가족으로부터 외로움을 느끼던 스튜어트는 스노우벨의 추격을 받다가 우연히 조지의 공작실에 들어가 조지가 만들다가 중단한 배를 보게 된다.
그리고 조지를 설득해 요트를 완성하고 요트 경주 대회에 나가게 된다.
출전한 요트 경기에서 스튜어트의 도움으로 우승한 조지는 드디어 그를 동생으로 인정하게 된다.
스노우벨은 하루아침에 리틀 가족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 스튜어트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스튜어트를 몰아내기로 작정하고 불량배 고양이들을 동원한다. 그러나 스튜어트가 결정적인 위험에 빠졌을 때 스노우밸이 도와준다.
스튜어트의 착한 심성이 스노우밸을 움직이게 되었고, 스튜어트는 집으로 돌아와 당당한 리틀 가족이 된다.
왜 하필 입양아가 생쥐일까?
인간 가족 구성원 중의 생쥐는 백인 가정 속의 유색인종을 상징할 수도 있다.
스튜어트라는 인물은 비주류적 존재 곧 사회적 약자를 상징한다. 거대한 도시의 수레바퀴 속에 한 개인은 한 마리 생쥐처럼 너무나 작은 존재이다.
리틀(Little)가 라고 명명한 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생쥐라서 가족이 될 수 없고 먹잇감을 친구로 사귈 수 없다는 편견에 도전하여 가족이 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벌이는 스튜어트의 행동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 사회 또한 다문화 국가로 들어선지 오래이다.
피부색과 문화는 다르지만 우리 주변에도 필리핀, 베트남 출신의 여성들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가족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혹 우리는 조지와 스노우밸이 가진 편견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가정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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