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십계명 중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첫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성경에서는 살인죄보다 더 큰 죄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죄라 말한다.
우리나라 노인복지법 1장에도 「노인은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지대한 공헌을 한 자로서 후대의 존경을 받을 의무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요즘 언론매체 보도내용을 보면 부모를 방치하고 학대하는 사건들이 많다. 참 씁쓸한 현실이다.
우리가 잘 아는 내용일수도 있지만 ‘어느 부모님이 자식에게 보낸 편지’ 일부를 소개해 보려 한다.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언젠가 우리가 늙어 약하고 지저분해지거든 인내를 가지고 우리를 이해해 다오. 우리가 음식을 흘리면서 먹거나 옷을 더럽히고, 옷도 잘 입지 못하게 되면, 네가 어렸을적 우리가 먹이고 입혔던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미안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조금만 참고 받아다오. 우리가 말을 할 때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더라도 말하는 중간에 못하게 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면 좋겠다. 네가 어렸을 때 좋아하고 듣고 싶어했던 이야기를 네가 잠이 들 때까지 셀 수 없이 되풀이 하면서 들려주지 않았니? 다리가 힘이 없고 쇠약하여 우리가 잘 걷지 못하게 되거든 지팡이를 짚지 않고도 걷는 것이 위험하지 않게 도와줄 수 있니? 네가 뒤뚱거리며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우리가 네게 한 것처럼 네 손을 우리에게 빌려다오. 사랑한다.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이 편지를 읽을 때마다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생겨난다.
부모는 열 자식을 키우지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모시기 어렵다는 말이 절실히 공감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은 시골이다보니 자녀들은 모두 객지에 거주하고 고향집에는 노부모만 덩그러니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고독, 빈곤, 질병 등의 고통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많다.
적막한 집에 젊은 사람이라도 찾아오면 며칠 하지 못한 말을 쉴새없이 꺼내놓으며 고독을 달래고, 읍내라도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병원에 한번 데려다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노인의 삶이다.
현재의 핵가족 시대는 아픈 우리 부모 세대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고독과 질병에 시달리는 노부모를 모시기 위해 귀향하는 자녀들을 자주 본다.
도시에 생활기반이 있어 가족이 함께 내려오지는 못하고 자녀 혼자 내려와 고향집과 도시집을 번갈아 가며 부모를 부양하는 이들이다. 이런 분들을 만날 때면 칭찬과 격려를 해주고 싶다.
그런데 여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수년 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귀향해 노부모와 생활하다 보니 잦은 의견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의견충돌을 잘 해결하지 못하면 오히려 서로에게 짐이 되고, 결국 부모에게 불효를 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심한 경우 다시 고향을 등지고 부모를 떠나 자신의 가족이 있는 도시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 뜻과 마음은 좋았지만 귀향이 실패로 끝나는 것이다.
이같은 실패의 원인은 수십 년간 부모와 자식이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가 부모를 모시기 위해 귀향할 때도 귀농인이 귀농훈련소를 거치듯 부모와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는 귀향훈련소나 상담소라도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마음이 든다.
부모 공경이란 자신의 부모에게만이 아니라 노인에 대한 공경을 포함하는 것이다.
노인을 대접하고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고 하면 요즘 젊은세대는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
노인복지법 1장처럼 노인은 국가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노인은 공경하고 대접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노인복지분야에 많은 세금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냐? 모든 노인이 국가에 대한 공헌을 한 것은 아니다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삶 자체가 공헌인 셈이다.
국가의 지탱과 유지를 위해서는 많은 세금(간접세 60%, 직접세 40%)이 필요하다. 우리가 입고, 쓰고, 먹고 사는 일 자체도 간접세라는 명목으로 국가에 귀속된다. 우리의 살아온 삶의 연수만큼이나 세금으로 국가에 공헌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