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올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 문턱에서 터득한 석산 일명 꽃무릇에 대한 나의 소록이다.
지난 9월 중순 모일간지 전면에 실린 고창 선운사 뒤뜰의 붉은 석산 사진 한 장은 늦더위에 꾸물대는 가을을 한 달쯤 성큼 앞당겨 놓았다.
그런데 그토록 아름답고 화려한 석산 군락지를 턱밑 어린이대공원에서 발견할 줄은 미처 몰랐다.
어린이대공원 관리소 뒤쪽에는 3~4000여 명의 객석이 있는 야외공연장 ‘숲속의 무대’가 있다. 이곳에서는 4월부터 10월까지 월 2회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정기 공연이 열린다.
서울팝스는 팝송뿐만 아니라 소시민이 접하기 쉽지 않은 고전 음악은 물론 재즈, 실내악, 영화 음악 주제곡에서부터 대중가요까지 행복한 주말 저녁을 선물한다.
이 야외무대 객석 후면에는 소파 방정환 선생의 동상이 있다. 동상 옆길을 매일 아침 산책 할 때면 작은 소나무 열대여섯 그루를 기둥삼아 밧줄로 처 놓은 반달모양의 출입금지표시가 항상 궁금했다. 궁금증은 8월말 경부터 금지구역 안에서 마치 콩나물처럼 하얗고 통통한 석산 꽃대가 자라면서 풀렸다.
그때부터 나는 돋보기와 자를 들고 꽃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꽃대 밑 땅을 파 뿌리를 살펴보고 꽃대 길이를 재고 꽃잎을 세어보았다.
꽃대는 땅속에 묻혀있는 타원형의 돌 마늘에서 하나씩 자라지만 어떤 것은 둘 셋씩 한꺼번에 자라기도 했다. 돌 마늘의 겉껍질은 흑갈색이며 약간 아리고 쓴맛이 난다.
꽃대는 원형의 흰빛 기둥으로 밑 둥은 지름이 15㎜에 이르나 끝은 5㎜에 불과하다. 키는 45~50㎝ 가량이며 다 자라면 꽃대 끝이 마치 칼로 쪼갠 듯 여섯 개의 가지가 되고, 그 가지마다 한 송이의 꽃이 핀다. 꽃은 9월로 접어들면서 한 두 송이 피기 시작하더니 중순에는 300여 구루의 군락을 이루었다. 선홍색 꽃잎은 여섯 개며 길이는 6㎝정도에 폭은 5㎜로 가늘다.
또 꽃잎이 마치 염소의 뿔처럼 바깥쪽으로 둥글게 휘어지면서 많은 주름이 잡힌다. 중앙에는 꽃잎보다 약간 긴 7㎝가량의 암술 여섯에 그보다 조금 더 긴 한 개의 수술이 가느다란 철사처럼 빳빳하게 돋아있다.
꽃이 활짝 피면 꽃대 끝에 매달린 여섯 개의 꽃송이가 마치 커다란 꽃다발이 된다. 더러는 꽃송이가 두 셋에 불과하거나 십 여 개가 넘는 기형적인 경우도 있다.
나무나 꽃이 군락지를 이루면 독특한 향기를 풍기지만 석산은 양란처럼 향기가 없다. 개화기간은 보름 남짓 되며 꽃은 아름답지만 벌이나 나비를 볼 수 없고 꽃이 진 후에도 씨앗이나 열매는 없다.
석산이 사찰주변에 많은 이유는 뿌리에 방부제 성분이 많아 불교의 탱화나 단청에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잎은 꽃이 완전히 지고 난 후 시들어 이리저리 어지럽게 넘어진 꽃대 아래서 2주쯤 지나면 야생 난처럼 돋아난다. 잎의 길이는 12~13㎝가량이며 넓이는 5㎜로 중앙에 흰 띠가 있는 두껍고 짙은 녹색이다.
석산을 상사화라고 부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두 종류는 같은 수선화과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으나 개화기가 약간 달라 상사화는 7월말이고 석산은 9월 초순이다.
특히 석산과 상사화의 꽃말이 같은 것도 재미있다. 꽃말은 대개 꽃과 사람사이에 얽힌 아름답거나 슬픈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석산과 상사화의 꽃말, ‘이룰 수 없는 사랑’은 꽃이 피는 동안은 잎이 피지 않고 잎이 필 때면 꽃은 이미 지고 없어 서로 볼 수 없는 자연생태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그리워하는 사연이 마치 내 첫사랑의 스토리텔링 같아 내가 석산을 좋아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