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자(편집국장)

‘황지현 꼭꼭 씹어 먹으렴’ 진도 팽목항에 차려진 밥상, 엄마는 매일 팽목항에 밥상을 차려놓고 딸을 기다렸습니다. 아빠는 바지선 위에서 매일 바다에 밥을 뿌렸습니다. 봄에 간 딸은 10월이 다간 29일에야 부모의 곁으로 왔습니다.
4월 16일, 대한민국은 울었습니다. 온 국민이 쏟았던 눈물, 지현이가 돌아온 날도 모두 울었습니다. 흘리는 눈물만큼 분노도 커갑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하는 유족들 앞에서 햄버거 등을 폭식하는 이들, 이를 광화문대첩이라고 자랑합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세월호 단어자체도 침묵해버립니다. 남북분단의 비극도 아픈데 대북 삐라를 살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삼팔선 인근 주민들이 반대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용납하지 못한 행위를 이들은 시도합니다.


일그러진 영웅들, 왜 이들의 영웅행위가 수면 위로 올라와 당당해졌을까요.
지금의 사회가 만들어낸 일그러진 영웅들입니다. 지금의 정부가 키워낸 부산물들입니다.
사회는 다양성의 종합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인정되는 건 아닙니다. 역사의 발전에 순응하고 역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가 판단의 기준입니다.
인간에겐 측은지심이 있습니다. 남이 아파하면 같이 아파하는 마음, 인간의 근원이자 인간성의 출발점입니다. 세월호 단식 유족들 앞에서 먹자판 잔치를 벌이는 행위는 결코 인간이길 포기한 행위입니다. 세월호 유족을 놓고 SNS에서 유희의 문자를 날리는 행위도 인간 존엄성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잊는다는 것, 조물주가 인간에게 준 커다란 선물이지요. 아픔도 잊고 실수도 잊어가면서 그 빈자리를 희망으로 채워가라는 망각입니다.


그러나 인간인 우린 모든 것을 망각하진 않습니다. 400여년이 훨씬 넘은 명량대첩이 새롭게 조명되듯 역사는 무심코 흐르다 한 순간 과거를 토해냅니다. 물처럼 흐르다가 커다란 장벽을 만났을 때 일순 용트림하는 것이 역사입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도 이후 이어질 숱한 역사 속에서 조명되고 평가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진상규명과 관련된 일련의 일들이 기록될 것입니다.
그 기록에 단식 유족 앞에서 먹자판을 벌인 행위도 기록돼야 합니다. 그것도 결코 잊혀서는 안될, 인간 존엄성의 상실을 보여준 하나의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대북 삐라살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의 자위권 강화와 중국의 대북공정,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정세는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우린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병자호란, 신미양요 등 숱한 외침을 받아온 민족입니다. 그런데 우린 전시작전통제권도 없습니다. 국방의 자립없는 한국, 그러나 군비지출은 천문학적입니다. 대통령은 통일 대박을 밝혔습니다. 통일대박, 무력통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대북삐라 살포가 현정부들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영웅시 되고 있습니다. 평화통일이 아닌 또 한번의 동족상잔의 비극을 바라는 것일까요. 주변 강대국들의 노골적인 행위를 보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얼마 전 산이면에서 풀무치가 대거 발생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땅속에서 몇 년간 숨죽이고 있다 모든 조건이 갖춰지자 일시에 수면 위로 올라온 것입니다. 일그러진 영웅들이 세상에서 활개칠 수 있는 것도 지금의 사회가 그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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