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은 한국 국문학사에 있어 커다란 획을 긋는 인물이다. 그가 현산 구시리 금쇄동과 수정동, 완도 보길도에서 지은 시는 한국 국문학사의 커다란 분수령이었고 담양 정자문화권에서 꽃피운 송강 정철의 가사문학과 쌍벽을 이룬다.
조선 중기 가사문학을 꽃피운 고산은 한국 최고의 정원가로도 평가받고 있다. 고산이 조성한 금쇄동과 수정동, 완도 보길도의 부용동은 우리나라 최고의 원림으로 꼽힌다.
고산은 현산 구시리 뒷산의 첩첩산중에 원림을 조성한다. 이곳은 육로를 거쳐 찾아야 할 산자수려한 산중이었고 완도 보길도는 배를 타고 찾아가야 할 해중자연이었다. 고산은 서로 대조되는 공간에 원림을 조성하고 그곳의 자연을 시로 표현했다.
현산 구시리 원림은 지금도 정자 터와 정원, 연못 등이 남아있다. 우리나라 원림 중 산정상에 조성된 곳은 현산 구시리가 유일하다.
고산의 산중 원림의 백미로 꼽히는 금쇄동은 사적지로 지정된 반면 고산이 먼저 조성한 수정동은 비지정 문화재이다. 수정동은 금쇄동과 불과 5리 거리다. 고산은 금쇄동과 수정동을 오가며 시를 지었다. 당연히 수정동이 빠진 금쇄동의 복원은 의미가 없다. 또 금쇄동과 연장선상에 있는 수정동도 사적지로 지정돼야 한다.
금쇄동이 사적지로 지정될 당시, 만안석산 때문에 수정동이 빠졌다는 설이 무성했다. 수정동이 빠짐으로서 만안석산은 연장허가가 계속됐다.
석산개발은 한 번 허가되면 연장허가가 계속된다. 그 결과 하나의 산 능선이 통째로 사라진다. 해남군은 금쇄동을 복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수정동이 빠진 개발은 허무하다. 또 개발 이전에 보전이 먼저이다. 금쇄동과 함께 문화재 가치가 큰 수정동 진입로는 석산개발로 옛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석산개발이 더 연장되면 수정동의 미래는 없다.
해남의 자원이자 한국 원림문화의 보고인 수정동이 더 훼손되기 전에 사적지 지정을 서둘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