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남주 (목포대도서문화연구원)

빨주노초파남보, 지난 일요일 해질 무렵 화원 일성산(335m) 허리에 걸려있는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았다. 탄성과 함께 카메라를 꺼내들어 몇 컷을 담았다.
그때 무지개 너머로 가물가물 거리는 것들이 있었다. 새떼였다. 멀어 자세한 모습은 알 수 없었으나 날아가는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느리면서도 우아한 날갯짓은 오리나 기러기의 까딱거리는 그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망원렌즈로 당겨서 찍어 보니 50여 마리의 흑두루미 같았다. 새 전문가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이에 동의했다.


공룡시대부터 살았던 흑두루미는 지구상에 만여 마리만 남아 있는 희귀종이다. 겨울철이 되면 시베리아나 몽골 등 습지에서 따스한 남쪽으로 내려온다. 순천만에서 300여 마리, 중국 양쯔강에서 천여 마리, 나머지는 모두 일본 규슈의 남쪽 가고시마 이즈미(出水)에서 겨울을 보낸다.
요즈음 흑두루미 가치는 날로 상승하고 있다. 흑두루미는 친환경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일본 이즈미의 경우에는 1950년대 이즈미평야에 200여 마리의 각종 두루미가 날아들었다. 주민들은 두루미의 보호를 위해 논에 습지를 만들고 옥수수 등 먹이를 주었다. 그 결과 두루미는 날로 증가해 무려 1만3000여 마리에 이르렀다. 이는 지구상에 잔존한 대부분의 개체다. 이즈미의 두루미들은 손에 잡힐 듯 접근해도 날아가지 않을 정도로 변했다. 조그만 시골마을 이지만 겨울철이면 4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우리나라의 순천만은 정성들여 가꾼지 10여 년 만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안습지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홍보되고, 순천만 정원박람회 개최, 문화관광부에서는 최우수관광지로, 최근에는 개청한 전남도청 동부지소에 환경국까지 옮겨오게 했다.


희귀조에 관한 해남의 실태를 보자. 일제강점기 학(두루미)떼가 송지면 통호·송호리에 도래해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15년 전 상황은 순천만을 능가했다. 해마다 간척호수 주변에는 다양한 희귀조들 즉 황새, 노랑부리저어새, 재·흑두루미 등이 날라들었다. 황새(50마리)와 노랑부리저어새(300마리)가 동시에 발견되기도 했다. 지구상에 2~3천 마리밖에 남아있지 않는 희귀조임을 감안 한다면 비중은 동아시아 모든 개체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환경단체에서는 수차례 토론회 등을 개최해 희귀조를 친환경농업브랜드 등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농림부에서는 희귀철새를 위해 마산면 뜬섬(약 50만평)을 개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편승해 해남군에서는 공룡박물관 위에다 철새전시관 건물부터 지었으나 예산낭비만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 사이 농어촌공사는 간척호수 주변 갯고랑 저습지를 모두 준설하거나 메꿔 개답했다. 심지어 개발을 보류한 뜬섬마저도 수백억 원을 들여 개답했다. 철새 최후의 보루라 칭했던 해남에서 저습지가 사라지면서 희귀철새도 보기 힘들게 됐다. 


며칠 전 필자는 큼지막한 지역신문 광고를 보았는데 해남군 여러 농업단체가 친환경농업 결의 대회를 연다는 홍보였다. 15년 전 상황과 오버랩 되며 격세지감과 아쉬움이 교차했지만 한가닥 희망의 단초로도 생각했다. 그런데 일반적인 친환경농업은 전국 어디서나 할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농산물이 친환경이라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브랜드다. 해남은 희귀조의 습성을 알고 이즈미나 순천만과 차별화된 접근을 한다면 가능하다. 희귀조를 불러 모으는 일 또한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자연환경 3대 조건은 간섭이 적은 광활한 평지, 겨울철에 얼지 않은 곳, 먹이활동에 필요한 깊이 30㎝내외의 저습지다.


따뜻한 해남은 전국최대의 간척지 논을 보유해 두 가지는 이미 해결됐다. 나머지 열쇠는 저습지인데, 우리나라는 4대강 공사 등으로 대부분의 저습지가 파괴됐다. 해남의 경우는 저습지 복원에 유리한 조건이다. 드넓은 간척호수가 주변에 있고 대규모의 간척지는 아직도 미분양 상태이거나 J프로젝트 부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경정책도 유리하게 돌아간다. 이즈미에서는 두루미가 한 곳에 집중돼 전염병으로 일시에 몰살 위험을 우려하면서 다른 곳에 분산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 문화재청이 5년 전 시작한 충남 예산군 황새텃새화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내년에 친환경 농사를 짓는 논에 방사를 하는데, 겨울철에 따뜻한 남쪽으로 모두 날아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2차로 황새 월동지 사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 효고현에서는 일찍이 황새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일부 황새를 방사했다. 이 중 한 마리가 올해 경상남도 김해시 친환경 논에 날아들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농사지었던 곳이다. 김해시는 친환경 농업의 결과라며 이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해남에서 저습지를 마련하면, 희귀조도 다시 몰려올 것이다. 이러한 생태계복원은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친환경농업의 최고 브랜드가 될 것으로 믿는다. 희귀조 브랜드사업의 성패는 해남군과 우리들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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