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구초심은 예기 단궁상편에 나오는 말이다. 은나라 말기 여상이라는 강태공은 위수가에 사냥나왔던 창을 만나 함께 주왕을 몰아내고 주나라를 세웠다. 그 공로로 영구라는 직에 봉해졌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하지만 그를 포함해 5대손에 이르기까지 다 주나라 천자의 땅에 장사지내졌다. 이를 두고 당시 사람들이 한 말이 바로 수구초심이다.
여우는 죽을 때 구릉을 향해 머리를 두고 초심으로 돌아간다라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 또는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유래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일컫는다. 우리 속담에도 ‘범도 죽을 때면 제 굴에 가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정서상 임종을 맞이하는 방법은 죽음이 임박해지면 병원 등 타지에 있다가 본인이 살아왔던 집에 돌아와 남은 생을 다하는 경우가 보편적이었다. 이렇게 집에 돌아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그래도 생을 마무리 하는데 있어서 본인과 그 유가족에게는 얼마간의 위안이 됐다. 사람이 집에서 죽지 못하면 객사했다 해 남은 유가족에게는 큰 수치가 되던 것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어떤 이유이든 죽음이 가까워지면 병원을 찾게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이 아닌 병원이란 곳에서 임종을 맞이하게 된다. 예전으로 표현하자면 객사한 셈이다. 긍정적인 방향에서 보자면 그만큼 지금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의료적 혜택을 누리며 적은 고통으로 세상과 이별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람들이 최선의 방법으로 선택한 임종일까?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수구초심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이 미물이라고 표현하는 여우와 범이 죽을 때면 자기가 살아왔던 굴을 그리워하며 머리를 두고 찾아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람에게든 동물에게든 본인이 살아왔던 집만큼 편안한 안식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밖에서 몸이 아프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병원일 법도 한데 병원보다는 집을 생각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집을 그리워하는 것은 부모형제와 살았던 곳이고 어린 시절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집이란 안식처이고 추억의 장소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추억이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보살피다 보면 치매 어르신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런데 치매어르신의 상당수가 주로 요구하는 말이 있다. 매일같이 똑같은 말을 어린 아이처럼 되풀이 한다. “나 집에 데려다 달라고”. 성화에 못 이겨 수십년간 살았던 집을 모셔다 드리면 여기는 본인 집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아마도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인자한 모습으로 맞아주고 품어 주었던 집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다수의 치매 어르신은 현재부터 기억을 잃어 가고 더 중증으로 진행되면 아주 오래전의 과거만을 부분적으로 기억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린아이로 태어나서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어린아이에게는 엄마가 계신 집이 최고의 안식처인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요양병원이나 병원 중환자실이 임종이 가까이 다가온 고령의 어르신들의 안식처로 변해 버렸다. 물론 본인의 의지나 의사와는 거리가 먼 결정일수 있지만 핵가족화 시대로 인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임종이 비단 노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인복지의 방향은 요양기관보다는 집에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는 재가돌봄 서비스다.
비록 생명을 연장해주고 통증을 줄여줄 의사와 간호사, 최신식 의료장비는 없지만 어려서 배 아프고 머리 아플 때 어머니가 만져주시던 따스한 손이 의사를 대신했듯 부모형제의 추억이 서려 있는 집이 임종을 맞이하는 당사자에게는 어머니의 약손을 느끼는 행복이지 않을까?
사람이 사람답게 죽을 수 있는 웰다잉(Welldying)을 바라고 꿈꾸며 본인의 자택에서 최대한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이 장기요양보험의 재가서비스일 것이다. 물론 자택에서 임종까지를 유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임종 당사자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의 추억이 묻어있는 자택에서 하루라는 행복의 시간이 마지막으로 더해지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