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상 위의 모과에서 향이 피어오른다.
과실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더니 되레 못난 모과에서 풍겨나는 모과향이 교실에 그득하다.
교정 동편 후미진 곳에 여년묵은 모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낙엽이 지고, 아침재를 넘어 온 찬바람에 옷깃을 세울 때쯤이면 가냘픈 가지 끝에 몸을 의탁한 모과가 노랗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찬바람은 채 여물지도 않은 모과들을 흔들어 대고 부대끼다 못한 모과가 여기 저기 굴러다닌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한 입 물어 보고 떫고 시큼한 맛에 내동댕이쳐버린 모과들이 안쓰럽다.
상처 입은 모과를 몇 개 주워 쟁반에 담아 놓았다.
“뭔 냄새데?”
교실을 들어서던 아이들이 코를 벌름거린다.
“야, 향기 좋네. 이거 뭐예요?”
“모과란다.”
“어디 있어요?”
“저기 학교 정원, 창고 옆에..”
“아! 그것 못생긴 거, 맛 하나도 없어요.”
“맛은 없어. 하지만 향이 좋단다.”
모과가 귤이나 유자 같았더라면 사방을 쏘다니는 아이들 손에 저것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리 없다. 모과는 겨울바람이 제 몸에 닿기 전까지는 모양도 색깔도 냄새도 관심을 끌지 못하는 실과이다. 찬바람이 피부에 닿을 때면 모과는 주변의 냉기를 제 몸에 품고 냉기는 색깔과 향을 무르익게 한다.
아이들이 하나 둘씩 주워 모아 놓은 모과를 과일 바구니에 옮겨 담았다. 모과 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속담에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고 했다. 모과는 과일같이 생겼어도 맛이 없어 잘 먹지도 않는 것인데 그것이 과물전에 끼여 다른 과물의 망신을 시킨다는 뜻이다.
속담처럼 겉모양을 보면 볼수록 참 못생겼다. 자연산 그대로인지라 모두가 비틀리고 제 모양을 갖춘 것이 하나도 없으며 여기 저기 뚫린 벌레 구멍 주위에는 더께가 더덕더덕 붙어 있다. 더군다나 나무에서 떨어지면서 찢기고 발길질에 상하기까지 했으니….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모과는 상처 입은 제 몸에서 진한 향기를 품어낸다.
어떤 실과에서 이런 진하고 고품위의 향이 풍기던가! 오히려 실과 중의 실과가 모과 아닐까?
‘모과 같은 놈’이라는 말이 있다. 앞뒤가 막혀서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혹은 너무 인색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건 모과의 겉모양만 보아서 그러리라. 세상에 쓸모없는 실과는 없다. 겉모양이야 어떻든 주변을 향기로 가득 채우는 모과는 매혹적인 실과이다.
유자도 향을 피어내지만 그 수명이 짧고 금방 물러져 버린다. 하지만 모과는 다르다. 제 몸이 다 마를 때까지 또 상처에서도 진액을 뽑아내어 향을 품어 낸다.
찢기고 할퀸 자국으로 범벅된 모과에서 풍겨나는 향! 향나무는 자기를 찍어대는 도끼에도 향을 묻힌다더니만, 모과 역시 상처에서도 향기를 낸다.
상처도 향기로 만드는 모과처럼, 자기를 찍어대는 도끼에도 향기를 묻히는 향나무처럼 그렇게 사는 인생이 멋진 인생 아닐까?
모과는 사람을 다섯 번 놀라게 한단다.
못생긴 열매에 놀라고, 못생겼지만 그윽한 향기에 놀라고, 열매는 분명 노랗게 익었는데 설익은 감처럼 거세고 텁텁한 맛에 놀라고, 맛이 고약한 열매가 한약재로 유용하게 쓰임에 놀라고, 못생긴 열매와는 달리 예쁜 꽃에 놀란단다.
모과는 모과답기에 향기롭다. 모과는 모과이기에 차가운 겨울에 향으로 피어난다.
못생겼지만 우아한 향과 멋을 풍기는 ‘모과 같은 놈’이 필요한 세상이다. 겉만 반지르르 한 것 보다는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는 모과 같은 이들이 그립다.
창밖의 못생긴 모과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향기도 흔들거린다.
아이들이 또 모과를 주워 온다. 향도 따라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