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지분쟁으로 선대에서부터 이웃 간에 사이가 안 좋았는데 이제야 정리가 돼 사이가 좋아졌네!” 지적재조사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의 말이다.
우리나라의 지적조사는 1918년 일제강점기 때 자원수탈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많은 세금을 받기위해 경작이 잘되는 지역과 발전된 도시지역은 비교적 정확한 측량을 했지만 그 외의 지역은 정확성이 떨어졌다.
예전에는 측량을 하지 않고 집을 짓고 잘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사 온 사람이나 토지를 사는 사람 모두 측량을 한다. 그러다보니 집이 남의 토지 경계를 침범한 사례가 발견돼 이웃 간 갈등이 생긴다. 측량비용과 이전비용 등 각종세금도 문제가 된다.
100년 전에 작성된 종이 지적도를 현실경계에 맞추고 소유권의 한계를 표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지금 전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세계측지좌표계가 아닌 동경좌표 체계를 사용하고 있는 점도 문제이다. 예를 들어 “현재 지적도로는 해외에서 배를 타고 해남에 도착했다고 하면 세계측지계 좌표상 우리군은 실제 고창군 선운사지역에 도착”하는 현실인 것이다. 지적재조사는 이러한 문제를 법적 테두리 내에서 한꺼번에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제도다.
현재 해남군은 지적재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일제식이 아닌 우리식으로 재측량을 한다. 옥천면 4개지구(영춘, 영신, 송산, 백호)가 완료됐고 2014년에는 송지면 통호지구, 내년에는 사구지역을 한다.
처음 지적재조사를 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처음 지적재조사를 한다고 했을 때 모든 지적인들은 나에게는 업무가 안 오겠지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첫 시도인데다 주민과의 마찰이 많고 업무 끝을 예상할 수 없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소송에 휘말리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쉽다. 타 시·군 및 선행 지역도 2012년 사업이 아직도 끝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적재조사업무를 추진해 보니 주민에게는 무료로 정확한 측량을 해주고 그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민원이 해결되니 다들 좋아한다. 이렇게 보람이 큰 업무가 또 있을까.
공직자는 군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천직이라고 하지만 주말에는 타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토지에 대한 경계와 위치·면적을 설명해야 했고, 농번기 때에는 밤을 이용해 설명회를 해야 하는 일은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한 지구의 지적재조사가 끝났을 때의 보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또 일제식이 아닌 우리식의 지적조사를 우리가 하고 있다는 보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주민들은 아직 지적재조사에 대한 이해가 낮다.
그러나 지적재조사가 진행된 마을 주민들의 만족도는 너무도 높다.
우리 손으로 만드는 우리식 지적조사, 최선을 다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