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인생도 7~80년의 시간을 조물주로부터 부여받아 활기 발랄했던 10대와 꿈 많았던 2~30대 청년기를 거쳐 가족을 위해 정신없이 뛰는 40~50대를 보낸다. 그러다 잠시 멈춰서 뒤돌아보면 어느덧 인생은 출발점에서 아득히 멀어져 있고 결국 인생의 끝자락에서 병마와 싸우며 죽음을 두려워하며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조물주(創造主)가 우리 인간에게 준 진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떠나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
이런 진리 앞에 노후를 계산하는 삶이란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들은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각종 보험에 가입한다는 것이다. 보험이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준비다. 어떤 사람들은 수십개의 보험을 가입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노후설계가 이것뿐이겠는가? 작게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와 죽음 이후 어떤 모습으로 조물주를 만날 것인가의 준비도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다.
옛말에 ‘개똥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듯 사람은 누구에게나 준비되지 않은 죽음 이후의 미래 앞에서 당황하게 되고 두려움에 떨게 된다.
우리나라는 형법상 기본적으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야 하고 심장이 뛰는 한 법적으로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없다.
법적으로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태국 등이다. 존엄사에 가장 관용적인 나라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불치병 환자에게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했다. 캐나다와 일본 등은 존엄사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환자의 고통과 죽음의 임박성, 본인의 의사, 고통 제거수단 유무 등에 따라 죽음의 순간에 기계적 호흡이나 심폐소생술 등을 중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여러 나라들처럼 법적으로 존엄사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1997년 12월 보라매병원 의료진이 회복불능환자를 가족의 요청에 따라 퇴원시켰다가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은 뒤, 무의미한 연명치료중단법을 만들자는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고,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이다.
지난해에도 연명치료를 받다 사망했거나 받고 있는 환자는 전국에 걸쳐 수천명으로 추산된다.
죽음의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각종 의료장치에 온 몸을 맡기고 내가 원하는 공간과 장소가 아닌 곳에서 가족과 자신에게 고통을 더해가며 죽음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죽음 이후 조물주 앞에 서야 하는 일 또한 중요한 문제이다. 조물주는 인간에게 양심이라는 법을 각자 하나씩 넣어 주었다. 양심은 내 안에 살고 있는 조물주의 법이다. 그래서 양심은 내 편이 아니다. 죽음을 가까이 한 사람들은 감시카메라처럼 일생동안 녹화된 불법행위들을 들이대는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양심에 기록된 불법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한 해의 마지막인 연말, 1년을 뒤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하는 것처럼 언젠가 맞이해야 할, 순서 없이 찾아오는 내 인생의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해두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