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자 편집국장

중국 최초 통일왕국을 건설한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는 영웅의 기질이 있는 태자 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황제로 등극시킨다. 실권을 장악한 환관 조고는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좋은 말 한 마리를 바칩니다”라고 말한다. 이에 말이 아니고 사슴이라고 말한 신하는 조고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여기서 등장한 한자숙어가 ‘지록위마’(指鹿爲馬)이다.


550여년 간의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 최초 통일왕국을 건설했던 진시황의 진나라는 환관 조고와 어리석은 임금으로 인해 15년이라는 너무도 짧은 기간에 무너지고 만다. 진나라의 멸망은 또 다른 영웅인 항우와 유방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키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550년간 춘추전국시대를 겪은 백성들에게 다시 기나긴 전란의 시대를 맞게 한 것이다. 
항우를 격파하고 진나라에 이어 제2의 통일중국을 건설한 유방의 한나라. 400여년 간 존속한 한나라였지만 환관 10명으로 지칭되는 ‘십상시(十常侍)’의 국정 농단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중국 역대 왕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 나라이자 강력한 왕권을 폈던 한나라도 환관들과 임금의 어리석음으로 막을 내렸던 것이다. 물론 한나라의 멸망은 유비와 조조, 손권이라는 영웅들을 배출시키며 중국에 삼국시대라는 또 다른 역사의 문을 열지만 세 영웅의 등장은 전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백성들을 무대 삼은 것이었다.  


2014년을 마감하는 시기에 청와대 찌라시 사건으로 등장한 십상시라는 단어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러한 세태를 놓고 교수들은 올 한해를 뜻하는 사자성어로 윗사람을 농락해 자신이 권력을 휘두른다는 의미인 ‘지록위마’(指鹿爲馬)를 꼽았다. 십상시와 지록위마는 중국이 기장 혼란한 때에 등장한 단어이다. 청와대 인사대란, 세월호 참사, 통합진보당 해산 등 하루가 멀게 터져 나오는 각종 사건들로 얼룩진 지금의 상황을 중국의 가장 혼란한 시기와 대별시킨 것이다.


전쟁도 아닌 멀쩡한 대낮에 숱한 어린 생명을 바다에 수장시킨 세월호 참사, 쾌쾌 묵은 이념논쟁을 부활시킨 통합진보당 해산, 진위여부를 떠나 가장 수치스러운 일로 기록될 청와대 찌라시 사건, 2014년은 기록될 역사가 너무도 많은 한해로 꼽힐 것이다.
이승만 정권 때부터 그토록 애지중지 했던 이념논쟁, 이념 앞에선 인권도, 다양성도, 집회결사의 자유도 허용되지 않았다. 반공이라는 이념 앞에선 독재 권력의 유지도 민간인 학살도 정당화됐다. 독재 권력을 유지하는 키워드였던 이념. 이러한 이념은 사회를 분열시키며 대한민국을 비생산적이고 너무도 소모적인 데로 몰고 갔다. 이념논쟁은 국면 전환용으로 너무도 잘 먹히는 먹잇감이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을 놓고 통진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우려를 표명한다.
획일화된 사회는 위험하다. 통진당 해산을 놓고 모든 진보세력의 활동을 이념이라는 틀로 묶으려는 것도 위험하다.
사회가 혼란하면 사람들은 영웅을 기다린다. 그러나 영웅을 기다리는 사회는 휘어진 사회이다. 한해 마지막에 등장한 통합진보당 해산, 역사는 과연 어떻게 기록하고 평가할까.
십상시와 지록위마는 어리석은 임금과 국정을 농간한 신하를 의미한다. 혼란한 사회와 어지러운 국정을 일컫는다. 그러나 정작 그 주인공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자신이 아닌 항상 밖에 있으므로, 그렇게 2014년은 저물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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