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자(편집국장)

살아가는 동안엔 지위와 경제력 등에 차이가 있지만 늙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는 대자연의 법칙입니다.
자연의 법칙인 늙음을 문제로 삼는 이는 없습니다. 자연이 준 평등의 원칙이니까요.
또 자연의 법칙에 순응한다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나의 짐을 물려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어르신들의 삶속에서 터득한 지혜와 경험도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한 몫을 합니다. 그러나 그 몫을 다하는데 있어 직접 할 것이냐 아니면 뒤를 따라오는 이들에게 조용히 그것을 전수해주고 그가 갈 길을 조언해주느냐가 문제로 남습니다.


어르신들은 분명 이 사회를 이끌었던 주역들입니다. 그러한 여정 위에 또 하나의 역할이 주어집니다. 젊은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여는 데 있어 조언해주는 역할입니다. 우리사회는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을 합니다. 민주주의는 투표로 상징화됩니다. 그러나 투표라는 것은 민주주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추대문화는 더 나은 민주주의 결정체이며 공동체 정신에서 비롯된 소산물입니다. 아쉽게도 우린 추대문화를 상실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해남 정신의 상징이자 젊은이들이 본받아야할 향교 전교 선거도, 노인회장 선거도 추대가 아닌 투표로 진행됩니다. 해남의 각종 명예직 단체장도 추대가 아닌 선거로 치러집니다. 명예와 인격마저 선거에 맡긴다는 것은 결코 민주주의라고 주장하기 힘듭니다. 정신의 상실, 명예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각 농축협 및 임업, 수협장 선거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들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농축협 및 임업, 수협장 선거 출마자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노령화 사업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합니다. 물론 연령을 놓고 출마자격을 논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내려놓음이 중요함을 느끼는 것은 자연의 변화법칙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연령에 따라 그 연령에 맞은 임무도 수여합니다. 10대는 철 없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해 세상을 마음껏 누비며 지혜를 체득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친 20~30대는 도전의 정신을 갖게 합니다. 40~50대는 조화로운 사고 속에서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60대는 좀 더 시야를 넓혀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혜안을 갖게 합니다. 70대 이상부터는 자신의 쌓았던 공덕을 잃지 않게 유지하도록, 후배들에게 삶의 경험과 지혜를 전수하고 조언할 수 있는 풍부한 지혜를 갖추도록 합니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비록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하더라도 젊은이들도, 후배들도 할 수 있음을, 그러한 과정 속에서 역사와 사회는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내려놓으시게요. 무겁게 짊어지고 가는, 자연의 순환에 맞지 않는 짐은 결코 영예로운 짐이 아닐 수 있음을, 그 짐이 결국은 모두의 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해남은 노령화 사회입니다. 달리 말하면 어르신들의 지혜와 덕이 해남을 아름답고 더 건강한 사회로 꾸릴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지혜와 덕이 온전히 해남의 발전과 후배들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은 내려놓음일 수 있습니다. 


농수산업의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농수산업을 희생삼은 경제발전과 가속화되는 중앙예속에서 농촌의 삶은 더 어려워집니다. 이는 각종 조합장 선거의 중요성을 의미합니다. 역동적인 조합, 유통의 혁신 등 변화하지 않으면 각 조합도 농어촌도 어려워집니다. 조합장도 전문경영인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그 짐을 누가 짊어가야 할지,  2015년 내가 짊어질 짐이 아니라면 과감히 내려놓으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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