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희(북멘토)

2015년 4월4일 오후 5시. 미황사 앞 장터카페 ‘달마루’에는 폭우를 뚫고 온 100여명의 사람들이 비좁은 카페 안을 가득 메웠다.
제1회 군민초대전 ‘자연에서 쉼을–조선미 전’의 개막식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였다.
식전 행사는 빗소리와 함께 이미숙 교사의 가야금연주와 문재식 교사의 대금연주가 장식했다. 이 전시회를 기획하고 노심초사했던 필자의 얼굴엔 그제서야 비로소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개막식 이전에 이미 100여명에 이른 사람들이 미리 관람하고 갔으니 작지만 대 성공이었다.
필자는 이 전시회야 말로 지역문화운동의 작은 씨앗이 뿌려졌다고 생각하며, 풀뿌리민주주의의 작은 실험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의미도 있다고 본다.


이번 군민초대전의 시작은 해남우리신문 편집국장과의 식사자리 대화중에 나왔다.
당시 이미 조선미 작가는 밴드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꾸준하게 공개했고, 그걸 본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의 작품을 실물로 볼 수 없냐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제1회군민초대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밴드를 통해 전시회비용마련 홍보를 시작했다. 일인당 무조건 만원.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무려 70여명의 사람들이 만원씩 보내온 것이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고 급하게 벌인 일인 만큼 다른 의견들도 개진됐으나, 다행히 모두 이해해 주셨고, 성황리에 개막식을 열게 된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이루어낸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제는 문화자본의 시대다. 앞으로의 시대는 경제자본보다 문화자본이 우위에 서는 시대가 올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삐에르 부르디외’가 말했던 ‘문화자본’이 중요한 시대인 것이다. 우리의 지역적 특성상 경제자본으로는 우위에 설 수가 없다. 그러나 문화자본만큼은 우리가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은 거창할 필요도 없다. 놀이하듯 자연스레 문화와 접하고 향유하게 하면 된다.
문화의 향유는 독서의 효용과도 비슷하다. 문화와 독서는 다름과 차이를 존중한다. 실패에 너그럽고 변화에 열려있고자 한다. 성글고 유연함 속에 담길, 넉넉한 자유와 상상력을 기대한다.


또 경쟁이나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가슴이 뛰기를 기대하면서 주체적으로 꿈을 찾고 키워가기를 서로 응원한다는 점에서 예술과 책의 효용은 일치한다.
아름다운 예술의 정수들이 오늘의 삶을 견디는 위로와 힘이 되어준다. 책을 읽는 일에는 경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책과 예술의 지혜로운 향유는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도와준다.
이러한 이유로 예술의 향유와 책읽기는 문화자본의 탄탄한 기초가 되어주며, 문화자본의 축적은 시민의식의 각성으로까지 이어진다.


지역문화운동은 풀뿌리민주주의의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풀뿌리민주주의란 보통 “시민이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사결정에 공적이고 지속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자치의 주체로서의 지위와 의식을 회복해가는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라고 정의된다.
‘주체로서의 시민’, ‘과정으로서의 참여’, ‘지역이라는 공간’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그 핵심인 것이다. 시민들이 자발적인 주체가 되어 이러한 전시회를 열었다는 것은 풀뿌리민주주의의 민간영역에서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풀뿌리 민주주의는 새로운 접근과 상상력을 요구한다. 제도화된 영역에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비제도 영역에서 시민의 참여를 활성화시키기도 해야 한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시민의 참여를 활성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예술의 향유와 독서, 그리고 풀뿌리민주주의 이 모두의 중심에는 상상력이 있다.
상상력이야 말로 우리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바꿔주는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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