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계에 부는 바람이 거칩니다. ‘다잉 메시지(dying message)’라 불리는 고(故) 성완종 씨의 55자 메모 내용으로 인해 정치권을 비롯해서 온 나라가 잡연(雜然)합니다.
정경유착이나 비자금에 관한 이야기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면역이 생길만도 한데 위각난 모습이 식상합니다.
사람들은 왜 정치에 뛰어드는 것일까요? 국민에게 봉사하고 싶어서? 아니면 자신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해서? 한 번쯤 힘을 휘둘러보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한 몫을 챙기기 위해서?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은 존재입니다. 많이 가지고 싶고, 높이 오르고 싶고, 남을 다스리고 싶고, 높은 지위를 획득하고 싶어 합니다.
역사를 돌아볼 때, 소위 영웅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치고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대의명분을 표방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지 않은 이들이 드뭅니다.
헬레니즘 문화의 기초를 확립한 알렉산더가 영웅이라 불리지만 피정복국은 초토(焦土)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전쟁 영웅 나폴레옹 역시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권력 유지를 위해 큰 나라를 섬기던 시대가 있었고 민주화를 위한 열망을 짓밟으면서 정권을 유지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국민은 희생물이었습니다.
지난 3월22일, 풍운아(風雲兒)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던진 말이 조용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김종필씨는 그의 부인의 빈소를 찾은 정치인들에게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재물은 귀신도 부린다. 한 정권은 가고 한 정권은 오되 재벌은 여전히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회창 전 총재 역시 한마디를 덧붙였는데 정치는 남가지몽이라 했습니다.
남가지몽이란 남가일몽이라고도 전해지며 백일몽(白日夢), 한단지몽(邯鄲之夢), 한단지침(邯鄲之枕) 과 같은 의미로서 ‘불꽃놀이는 잠시이고 인생은 유한하다’던 교황-프란치스코의 말과 상통합니다.
또, JP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열매가 있으면 국민이 나눠 갖는게 정치다”, “정치인이 열매를 먹으려하면 교도소 갈 수 밖에”, “○○하면 뭐하나… 다 거품 같은 것”.
권력은 무상합니다. 이 세상의 어느 왕보다도 많은 것을 소유하고 살았던 솔로몬 왕도 나중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또한 권력 그 이후를 보면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정치인들이 드물고 나머지 삶이 비참하거나 감옥과 진배없는 외면당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정치는 과연 허업(虛業)일까요?
사전은 정치에 관해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정치(政治)란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고.
정치가 허업이라 불리는 것은 정치 본래의 목적인 국민의 인간다운 삶과 사회 질서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JP의 일침(一鍼)처럼 자신의 양명과 영화를 얻으려 한 결과입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결코 허업(虛業)이 아닙니다.
링컨, 처칠, 우리나라에선 세종대왕 등은 후대가 기리는 정치인들입니다. 세계인들이 추앙하는, 영웅을 넘어 성웅이라 불리는 충무공이 영화 ‘명량’에서 던진 한 마디는 그가 왜 성웅이라 불리는지를 말해 줍니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좇아야 하고 충(忠)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정치의 목적이 백성일 때 정치는 허업이 아니라 실업(實業)입니다.
정치가 허업이든 실업이든 그 피해자와 수혜자는 국민입니다.
어느 날 TV에서 한 정치인이 “다음 표를 위해서”라는 말을 했습니다.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 눈에 비친 대부분의 정치인은 ‘다음 표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길벗은 정치를 하수(下手)들의 잔치라고 비꼬았던 걸까요? 아니면 그들이 표리부동(表裏不同)하다거나 속내가 너무도 복잡한 걸 말하는 것일까요?
실밥 터지는 소리가 빈발합니다. 우리나라 정치의 난맥상을 보며 시인 존 던의 마지막 기도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