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자(편집국장)

기원전 1600년경 중국 하나라 마지막 왕이었던 걸왕은 빼어난 미인이었던 첩 말희를 위해 요대라는 새궁전을 지었다. 회랑과 난간들을 온통 상아로 장식한 초호화판 궁궐이었다.
걸왕이 요대 연못에 술을 붓고 나무에 고기를 걸고 주지육림(酒池肉林)을 즐기며 패륜의 정치를 하자 탕왕은 걸왕을 죽이고 은나라를 세운다. 그러나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도 어여쁜 첩 달기를 위해 녹대를 세웠고 이곳에 전쟁으로 얻은 각종 보물들을 저장했다.
애석하게도 은나라가 멸망할 당시 주왕은 훨훨 불타는 녹대에서 자결하고 만다.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 최초 통일국가를 세운 진(秦)나라의 진시황제는 아방궁을 세웠다. 1만 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궁궐이었다.
사치와 호화의 대명사가 된 ‘아방궁’은 후에 함양에 진격한 항우의 군대에 의해 불타고 말았는데, 타오르는 불이 석 달 동안이나 지속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말, 세도정치를 펴던 안동김씨를 물리치고 확고한 기반을 닦은 대원군이 백성들에게 깜짝 제시한 사업이 경복궁 중수사업인 토목공사다. 경제능력이라곤 전혀 없던 고종 때 경복궁을 중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원군은 경복궁 중수로 국고가 비자 도성의 출입세를 받고 각종 세금 인상 및 새로운 세금추가, 전국의 노송과 돌을 징발했다.
결국 대원군의 이같은 토목공사는 일제강점기라는 식민시대를 앞당기고 만다.
백성들과 전혀 무관한 대형 토목공사는 한 나라를 기울게 한다.


이명박 정부 때 시행한 4대강 사업, 당초의 목표대로라면 지금 숱한 배들이 4대강을 누벼야 한다.
이명박 이후 들어선 현 정부는 4대강에 쏟아 부은 국고와 함께 경제전망이 어두운데도 복지예산을 대폭 늘려 주민들의 호주머니에서 그 예산을 충당시키려 한다. 대원군은 경복궁 중수에 따른 예산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호주머니를 털었다면 지금의 정부는 주민세 인상, 공무원 연금 개정 등 철저히 서민의 주머니만 겨냥하고 있다.   


중국 서주(西周)의 마지막 왕인 유왕에게는 포사라는 첩이 있었다. 이 포사라는 애첩은 이상하게도 웃지를 않았다.
그러자 유왕은 포사를 웃게 하기 위해 여산에 있던 봉화대에 불을 피웠다. 허겁지겁 달려오는 제후들의 모습을 보고 포사는 웃었고 그 뒤로도 유왕은 세 번이나 봉화를 피웠다.
정작 견융이 침략해오자 봉화가 피어올랐지만 군사를 몰고 온 제후는 없었고 유왕은 칼에 맞아 죽고 만다. 양치기 소년같은 장난이 부메랑이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시행했던 자원외교를 조사해 국면을 전환하려 했던 수사도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하루가 멀다하게 터져 나왔던 적폐니, 해산이니, 부정부패 척결이니, 사정이니 그토록 외쳤던 권력실세들이 수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용어만 달라질 뿐 해산이니 적폐니, 척결이니 하는 단어는 언제나 쇼킹하다.
봉화라는 극단적인 처방으로 포사를 웃게 하려했던 유왕의 예는 극단은 또 다른 극단의 부메랑을 탄생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통없는 독선도 나라를 기울게 한다.
중국 장수 중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항우, 그러나 항우는 주변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독불장군이었고 칼 이외의 덕치와 인본주의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결국 한때 자신의 부하였던 유방에게 해하의 전투에서 패해 사랑하던 우희와 함께 자결하고 만다.
아랫사람을 잘못 써도 나라가 기운다. 중국 진나라도 환관 조고로 인해, 한나라도 10명의 환관으로 인해 멸망했다.


세월호 1주년에 터진 성완종 리스트, 대통령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전․현직 비서실장에 국무총리까지 포함된 사건, 이들을 고용한 이가 누구인가.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고 유감스럽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제3자의 일인냥 철저한 수사만을 강조한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1주년이 된 날, 여론을 의식해 진도 팽목항을 찾은 후 해외순방을 떠났다.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은 이날 정부의 세월호 진상규명 절차에 대한 항의 표시로 팽목항 분향소를 임시 폐쇄하고 현장을 떠났다.


대한민국이 다시 슬픔에 잠겼다. 1년이 지났으면 조금이라도 치유가 돼야 하는데 더 큰 분노와 절망까지 더해졌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