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천(전 해남동초 교사)

얼마 전에 종영(終映)된 KBS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를 보면서 아버지의 역할과 사회 현상을 생각했습니다.
자식들만을 바라보며 홀로 살아온 ‘자식 바보 아빠’가 이기적인 자식들을 개조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불효 소송, 가족이기에 당연하게 여겼던 고마움과 미안함을 되돌아보게 하는 휴먼 가족 드라마입니다. 아들은 의사이고 딸은 대기업에 다니건만 아버지 생신에 촛불 하나 켜 줄 이가 없는 외로운 아버지, 아버지는 늘 속으로만 우는 슬픈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누구일까요?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해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중략)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김현승님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아버지!
유교(儒敎)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제도에서 한 가족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아버지였습니다. 부계사회에서의 아버지는 가정을 다스리고 가계의 연결고리인 가장(家長)이었으며 아버지의 말씀은 가정의 성금이었습니다.
한자의 부(父)자는 도끼를 들고 있는 모습이라고도 하고 또 손에 회초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라고도 합니다.  또 인도의 고전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아버지(아빠)라는 말은 ‘지킨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한 가정의 아버지는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관계적인 세움을 토대로 도덕적 세움, 사회적 세움 등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지키는 아버지가 아닐는지요.


모든 동물 가운데에서 가장 미숙한 채로 태어나는 것이 인간입니다. 다른 짐승들은 태어나자마자 걸어 다니고 스스로 먹이를 구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식을 키워내는 과정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어머니의 힘만으로는 자식을 키워 내기가 어려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식에게 젖을 먹여 기르고 아버지는 먹을 것을 잡기도 하고 침입자를 막아 가족을 보호하며 살아오는 과정에서 가족제도라는 것이 형성되었습니다.
가족제도 속에서 오늘의 ‘나’가 존재하며 아버지와 자식이라는 인륜(人倫)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요즘 시대를 ‘상실의 시대’라고 합니다. 본질이나 기본 가치가 상실되어 가는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상실의 시대를 풍자하는 말 가운데 ‘아버지 없는 시대(Fatherless Society)’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정에 아버지가 있어도 아버지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이겠죠. 
아버지 부재 현상은 이혼이나 별거, 사망 등으로 인한 사실적인 부재와 아버지가 있으나 없는 것 같은 비사실적인 부재가 있습니다. 사실적 부재에 비해 비사실적인 부재가 현금의 아노미 현상입니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말처럼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식이 이루는 삼각형이 제대로 균형을 잡아야만 안정된 가정을 이룰 수 있는데 균형을 잃어갑니다. 어머니가 소외됐던 시대도 건강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권위가 퇴색된 시대도 건강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져 가는 아버지 없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사회 현상을 냉정히 들여다보면 아버지 없는 시대의 모습이 보입니다.
마마보이(mamma’s boy)의 증가. 나약함, 도덕성의 상실, 오직 자기중심적이며 무질서와 폭력과 비속한 일들이 판을 치는 고장난 사회는 균형을 잃은 가정이 근원지일 것입니다. 


1942년 좋은 아버지상을 받은 맥아더장군의 이야기입니다.
“직업상 저는 군인이며, 저는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자랑스러운 것은 제가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군인은 세우기 위해 허뭅니다. 아버지는 허물지 않고 세울 뿐입니다.(중략) 내가 죽은 후 내 아들이 전쟁터의 내가 아니라 가정의 나를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입니다.”


5월을 보내며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누구일까요?(Who is father?)
아버지는 세우는 사람이며, 세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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