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부터 문화 예술의 활동은 권력과 재력을 가진 왕과 귀족사회의 보호를 받으며 파트너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귀족사회가 무너지자 예술가들은 빈센트 반고호처럼 가난에 몰리게 된다. 이에 신흥자본가들은 미술품도 자본의 증식수단, 투자가치라는 점을 이용해 경매제도를 활용, 높은 가격일수록 작품가치와 비례한다는 등식으로 예술가와 대중들을 현혹시켰다.
여기에 고가로 팔릴수록 자신의 위치도 그만큼 올라간다고 착각하는 ‘국전’ 같은 제도권 작가들이 생겨난다. 물론 상술에 뛰어난 화랑주, 옵션 투자가는 입맛에 맞는 작가를 선정해 독점하면서 양심적 비평가를 배제하거나 평단을 매수해 고액 낙찰가로 작가의 권위를 과시한다.
관료주의는 자신의 자리보전과 영달을 위해 전문적 소양과 관계없이 정치적 눈높이에 맞춰 상업적 대중성과 결합한다. 이른바 각 시군이 경쟁하듯 생겨나는 문학관, 미술관 등이 그것이다. 가장 많이 팔리는 작품이 문학 가치와 비례하지 않는 것처럼 미술판도 마찬가지이다. 제주도는 이중섭이 잠깐 머물며 작품 활동한 사실을 확대해 소장 작품 한 점 없이 미술관을 만들고 홍보한다. 정작 제주도 출신이자 향토적 서정의 최고봉인 변시지 화백의 그림이나 제주도 4·3항쟁을 그린 강요배의 서사화를 선보이는 대신에 제주의 예술정신과 거리가 먼 관료주의로 관광객에게 눈속임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는 영화 어벤져스2가 단기간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서울시가 어벤져스2의 성공적 촬영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탓이다고 진단한다. 이어 서울시는 어벤져스2의 현지 촬영을 위해 교통을 통제하면서까지 각종 편의를 제공했고 영화진흥위원회는 촬영에 드는 제작비용의 3분의1에 해당하는 예산을 지원했다. 극장은 어벤져스2의 흥행 독주를 위해 스크린을 아낌없이 내줬다. 세계 최초 개봉을 홍보하기 위해 내한한 배우들에 대한 미디어의 경쟁적 환대와 아낌없는 홍보성 보도는 어벤져스2의 흥행가도에 제트 엔진을 달아줬다. 나머지 영화들은 바닥을 헤매고 있을 때 어벤져스2는 한국 멀티플렉스의 황소개구리가 됐다.
이 영화가 동시에 개봉했던 다른 영화들의 씨를 말릴 정도로 재미의 정당성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에게 특별히 남는 것 없이 한국 영화는 더욱 골병이 들 것 같다고 하는 그의 조심스런 충고는 너무도 당연하다.
어찌 제주도만 비웃을 것인가? 현 정부의 무지한 문화의식이 지배하고 있는 풍토에 서울이고 지방이고 관료주의 속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나라의 부강은 문화의식 수준과 같지 않다. 문화의식은 건전한 중산층이 다수를 차지하고 문화적 행복을 누릴 때 형성된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10%도 안되는 자본가가 90% 이상의 부를 축적하고 있다. 그사이 중산층은 사라지고 없다. 이들은 7, 80년대 민주화를 외친 문화 예술인의 대열에 합류해 공감대를 형성한 건전한 시민세력이었다. 그리하여 한때나마 민주정부 시절을 맛 본 것이다.
민중예술이 태어나 기세를 올린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거기에는 억압된 현실정치에 비판의식이라는 시대정신이 반영돼 있다. 이를 다른 말로 서사성이라 한다. 그러나 서사성만으로는 건조하기 때문에 부드러운 인간의 감성을 드러내는 자연과의 교감, 서정성의 미학, 미학적 형식이 필요하다. 작은 나라의 백성이 모여 문화의 행복을 즐긴다면 미국이나 중국 같은 부강한 나라를 부러워할 것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