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동석(목포대 명예교수)

최근 한겨레 신문보도에 의하면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지난 8일 낮 3박4일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김포공항으로 돌아와 기자회견을 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지난 5일 북한에 전통문을 보냈다가 거부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통문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산가족 상봉 회담 등 대북 대화 제의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KBS ‘일요진단’에 나와 “이번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나서 회포를 푸시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부가 이 이사장 방북 당일에 이 이사장을 메신저로 활용하지 않은 채 별도 대북 제안에 나선 것이라면, 이는 과거 정부를 상징하는 이 이사장에게 남북관계 개선의 공과 스포트라이트를 돌리지 않으려는 불필요한 경쟁심에서 비롯된 무리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이사장은 이날 귀환 회견에서 “저는 이번 방북에서 어떠한 공식 업무도 부여받지 않았지만, 6·15 정신을 키우는 데 일조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정을 소화했다”고 말했다. 방북단의 한 인사는 “정부가 메시지 전달 등 임무를 부여했으면 수행할 생각이 있었다는 ‘뼈 있는 말’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왕 방북을 허용했으면 전통문도 소지하게 하고 박지원 의원 방북도 허용해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키도록 하는 관용의 태도가 필요했다. 이것은 위정자 마음만이 아닌 미국의 속셈이 숨어 있지 않을까.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에 의하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2002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켰고 1년 뒤 독재국가 ‘3인방’의 하나였던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침공했다. 북한은 붕괴될 다음 순번의 국가로 보였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침공하지 않았다. 네오콘들은 대체로 중동에 초점을 맞췄다. 북한은 대규모로 배치한 장사정포를 통해 인구 밀집 지역인 서울을 파괴하는 식으로 신속하게 보복할 수 있다. 또한, 미군이 김씨 왕조를 몰아내도 평양을 접수할 수 있는 그럴듯한 망명정부도 없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비슷한 질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다음 차례는 북한인가?


이번에는 학자와 언론인들이 오바마 행정부의 ‘화해의 축’에 북한이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을 하고 있다. 미국과 쿠바는 수십년간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대사를 교환했다. 미국과 이란은 대다수 국제사회의 지지 속에 이란의 핵프로그램을 동결하고 그 대가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큰 협상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북한이 정권 교체의 다음번 대상이 되지 않은 것처럼, ‘화해의 축’의 다음 차례 국가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쿠바나 이란과 달리 미국 내부의 어떤 주요한 유권자 집단도 북한과 화해하도록 압박하고 있지 않다.
미국의 경제계는 이란에선 원유와 가스, 쿠바에선 농업과 관광 분야에서 커다란 수익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란이나 쿠바처럼 ‘투자 노다지’가 아니다. 인구도 적고, 많은 해외 기업들이 이미 북한에서 사업을 시도하다 돈을 잃었다. 사회간접자본 시설이나 법률도 예측하기가 어렵다.


김 제1비서가 6자회담을 재개하고 핵프로그램과 글로벌 경제의 참여를 맞바꿀 수 있지만, 그가 그런 협상에 관심이 있다는 어떤 조짐도 없다는 것이 존 페퍼 견해이다.
그러나 남한은 북한과의 경제협력에서 얻을 이익이 여간 크다. 성장이 멈춘 경제를 활성화시킬 기회이다.
그러나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 상봉만큼 감격스런 행사가 어디 있을까.
이를 방해만 했으니 옹졸하고 치사한 정부의 마음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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