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권(북일치안센터장)

“여기 인천인데요. 저희 어머님이 평덕리 마을에 혼자 살고 계시는데 며칠 전부터 전화가 안 되서 걱정이 되네요. 한 번 알아봐주실 수 있어요?”
지난해 겨울 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자정이 다된 사간에 파출소로 걸려온 전화 내용이다.
고향에 계신 노모님이 며칠간 전화를 받지 않자 걱정하던 아들이 파출소로 전화를 걸어 확인을 부탁한 것이다. 전화를 받고 할머니댁을 방문했을 때 할머니는 안 계시고 문은 전부 잠겨있었다.
다만 마당에 걸어놓고 불을 지핀 솥단지에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었고, 동네 이장님이 아침에 장을 보러 간다고 나가는 할머니를 봤다는 진술만으로 안부를 확인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슴푸레 동이 틀 무렵 못내 할머니의 안부가 걱정이 됐던 나는 또다시 할머니댁을 방문했다. 그리고 마당이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미소가 어둠을 밝히는 것을 보았다.
마당에 걸린 솥에 불을 지피고 계시던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순경아저씨가 우리집에 웬일이여?”하고 물으시는데, 할머니의 무사함이 반가워서 였을까?
어슴푸레한 어둠과 아궁이의 불꽃이 빚어낸 채광을 배경삼아 그려진 할머니의 미소는 새벽을 깨우는 천사의 미소 바로 그것이었다.


그 미소에 한참을 취했다가 “뭔일이여? 어여 추운데 이쪽으로 와 앉아”제차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그때서야 할머니의 안부를 여쭸다.
“간밤에 어디 가셨어요? 아드님이 전화 안 받는다고 걱정하고 있어요”라는 질문에 동네 친구인 화순댁 집에서 자고 오셨고 전화는 울린 적이 없단다. 전화기를 살펴보니 전화기 선이 뽑혀 있었다.
전화기 선을 꼽아주고 나오는 뒷발치에 연신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


아! 이보다 뿌듯하고 보람찬 일이 또 있을까? 지금도 할머니의 미소와 목소리를 생각하면 경찰이 된 내 자신이 너무나 고맙고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이제는 밤낮으로 제법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기온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는 환절기이다.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더라도 고향에 홀로계신 부모님께 전화라도 자주해서 안부를 여쭙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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