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희(북멘토)

예술이야말로 아주 인문학적인 분야다! 며칠 전 고정희 시인의 시 ‘우리동네 구자명씨’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고정희 문화제 때 생가에서 공연했던 것을 이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읍 구교리 자연드림 무대로 옮겨 두 번째 공연이 열린 것이다. 연기경력이 전무한 사람들이 모여 멋지게 연기해내는 공연을 보며 ‘해남의 문화적 자산과 저력이 도대체 어디까지 일까?’ 전율하며 필자는 공연 내내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역시 해남에 살기로 한 결정이 잘한 결정이었구나’라는 생각과 내가 해남군민이라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준 아주 멋진 공연이었다. 인문학으로 무장한 문화적 자존감은 변방성을 극복하고 스스로 중심이 되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다.


또 현재 전시중인 행촌미술관 ‘풍류남도 만화방창’ 프로젝트는 또 어떤가. 올 봄 국내의 내로라하는 저명작가들이 해남으로 모였다. 그들은 해남을 그렸다. 그리고 그때 그리고 간 작품을 전시한다. 현재는 해남 곳곳에 그들의 작품들이 숨바꼭질하듯 걸려있다.
서울 못지않는 안복을 누린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해남 곳곳에서 벌어지는 고품격의 작은 공연들도 얼마든지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해남 문화의 현주소다. 해남의 한 북카페에서는 매일 오전 통기타를 배우는 사람들이 모여 기타를 함께 배운다. 낭독모임이 열린다. 월요일은 월요일에 낭독한다고 해서 월랑, 화요일은 화랑, 수요일은 수랑…. 함께 돌려 읽어가며 눈으로만 읽었을 때 경험해보지 못했던 전율을 느낀다. 가끔 전혀 토론거리가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토론을 벌이고, 느닷없이 남자들끼리 요리대결이 펼쳐진다.


해남공공도서관은 명실상부한 인문학의 플랫폼이다. 매주 화요일은 성인 인문학의 날이다. 올 1월부터 인문학스터디가 조직돼 1기 강좌와 2기 강좌를 거쳐 현재 제3기는 ‘동양사 강의-한시와 함께 읽는 중국사, 하이쿠 우키요에와 함께 읽는 일본사 강의’가 진행 중이다. 매주 화요일 밤 7시 공공도서관으로 오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또한 매주 토요일은 청소년인문학당이 초등반, 중등반으로 나누어 열린다. 그 뿐인가. 매달 한 번 ‘달달한 인문학’이라는 행사가 있다. 명사들이나 유명작가들을 초청해 인문학강연을 여는 것이다. ‘길 위의 인문학’은 또 어떤가! 1차 때는 ‘조선후기 명필들의 각축장–대흥사와 백련사의 현판기행’을 떠났다. 40명 참가모집이 1박2일 만에 가득 찼다. 2차에는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고산의 삶과 문학’기행을 보길도로 다녀왔다. 이날은 해남에서 처음으로 도서관 문을 열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가, 이십분 만에 좌석예약이 모두 끝났을 정도로 대단한 호응이었다.


또 공공도서관은 도서관 전국 최초로 책을 이야기하는 팟캐스트 ‘옴마 도서관이 말을 해야’(이하 ‘옴마’)를 운영 중이다. 작년 12월 초부터 시작한 ‘옴마’는 매주 화요일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새 ‘옴마’가 업데이트 되고 있다. ‘옴마’는 철저히 지역사람을 우선 출연시킨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의 책 이야기. 조금 세련되지는 못한 방송이지만, 내가 읽은 책으로 방송에 나간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금 해남엔 인문학 바람이 몰고 온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져 가고 있는 중이다. 변방성의 극복은 문화적 자존감에서부터 비롯된다.


미래는 잘 노는 사람들의 세상이 될 것이다. 인문학으로 무장된 시민들이 진정한 지방자치를 이뤄내고 주체적으로 중심이 돼나가는 그러면서 그 모든 과정들과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해남. 그 해남이 바로 머지않은 해남의 미래다. 모두 함께 서로 번지고 스며들 수 있는 인문학적 토대를 쌓자. 그리고 문화를 창조하고 즐기고 민주주의를 완성해내자. 그것이 바로 해남 인문학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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