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자(편집국장)

중국 춘추전국시대 나라 중 하나였던 진(晉) 나라 진영공 때의 이야기다.
당시 병권을 쥐고 있던 조천이 구테타를 일으켜 왕을 살해한 후 그의 형인 조순을 왕으로 옹립한다.
왕으로 옹립된 조순은 자신의 왕위를 공고히 하고 이를 합리화 하기 위해 구테타의 주범인 동생 조천을 난신적자(亂臣賊子)로 몰아 처벌한다. 이때 진나라의 사관은 동호(董狐)였다.
동호는 조순이 임금인 이고를 시해하다고 기록한다. 이에 조순은 사관 동호에게 기록 정정을 명하지만 동호는 이를 거부한다.


여기서 유래된 것이 동호직필이며 후세 사관들의 본보기가 된다.
이후 50년이 지난 BC548년 제(齊)나라의 제장공이 그의 스승이자 재상인 최저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은 사건이 일어난다.
이에 재상 최저는 제장공을 살해하고 전권을 장악한다. 이때 제나라 사관은 태사 백(伯)이었다. 태백은 최저가 군주를 시해하다고 기록한다. 이에 최저는 시해(弑害)라는 용어 대신 주살(誅殺) 혹은 극(殛)이라는 말로 바꿀 것을 강요하지만 백이 거부하자 처형해 버린다. 당시의 사관제도는 한 가문이 담당했다.
백(伯)이 처형되자 동생 중(仲)과 숙(叔)이 사관을 맡는다. 그러나 이들도 정정을 거부해 차례로 처형된다. 사관 직을 이는 막내 동생 계(季)도 기록변경을 거부한다. 이때 최저는 필봉이 칼끝보다 무섭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이들 사관들은 왜 자신의 목숨보다 역사기록을 더 중요시 했을까.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역사란 결코 권력자의 역사라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교과서가 국정교과서로 바뀐다.
역사란 고정된 것이 아닌 각 시대에 따라 해석을 달리한다. 또한 개인마다 입장 차이가 있다. 역사에 대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내용이 다양한 것도 그 이유이다.
그래서 E.H.카는 역사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옛 사관들이 목숨을 잃어가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것도 권력자의 입장에서의 기록이 아닌 사실의 기록, 사관으로의 역사관이었다.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은 유신시대로의 회귀이다. 유신시대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획일화이다. 장발도 금지하고 유행가도 금지시켰다. 획일화된 사회는 극단만을 추구한다. 반대의 입장을 허용치 않는 사회, 일방적인 지시만이 존재하는 사회다. 유신시대 때 역사교과서가 국정교과서로 바뀐 것을 민주정부 때 검정제로 바뀌었다. 그런데 다시 유신시대로 회귀인지 국정교과서 추진이 강행된다. 독재정권에서나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행위이다.


우리사회는 군사독재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움직임은 그 시대로의 회귀이다. 획일화된 역사는 주입식 역사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비판할 수 있는 사고를 막아 버린다.
한 나라의 역사를 획일화 시키겠다는 발상, 권력의 입맛에 맞추겠다는 역사관, 얼마나 역사에 반한 행동인가.
21세기에 살고 있는 국민들을 우매화시키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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