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길록(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장의 위원)

내가 거산 김영삼 전 대통령을 가까이 보좌하게 된 것은 32년 전 1983년 가을이다. 
미국에 망명 중인 김대중 선생과 협의한 민주화추진협의회(이하 민추협)를 창립하는 비밀 작업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그때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5·17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철권통치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고 언론통제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했고, 김영삼 씨는 가택연금과 단식, 김대중 씨는 미국에 망명중이었다.


양 김 씨는 비밀리에 합의해 민추협을 결성하고 제12대 총선을 준비했고, 나는 서울 시내에 사무실을 임차하기 위해 보안사령부와 중앙정보부의 온갖 방해공작을 따돌리며 입주하는 비밀작업을 맡아서 성공시켰다.
1984년 2월 김대중 씨가 미국망명에서 귀국해 신한민주당을 창당했고, 그 열기로 어용 야당이던 민주한국당을 제압하고 제일야당으로 부상하며 군사독재타도와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김영삼 공동의장은 순발력과 돌파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출중한 승부사의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러나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두 김씨는 갈라졌다. 김대중 공동의장이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며 통일민주당에서 분당함으로써 군부세력인 노태우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줬다.
결국 군정연장과 민주화세력의 분열 및 지역감정이 심화되는 영․호남 갈등을 가져오는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이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두 김씨가 분열되지 않았다면 노태우 군정연장, 이명박 포크레인 정권, 박근혜 유신정권은 탄생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정통 민주화 세력의 분열과 망국적인 박정희 정권이후 발생한 지역감정도 해소돼 동서의 갈등도 사라졌을 것이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대통령에 오르게 된다. 야당의 큰 어른으로 활동했던 그가 여당과 합당해 대통령직에 오른 것이다. 또 대통령 직에 있던 동안 IMF가 터졌다. 그를 평가하는데 있어 이러한 점은 안타까움으로 작용한다. 나도 그때는 분노했고 가슴 아파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민주화를 꽃피우는데 역할을 했다. 또한 그가 키운 이들이 여야에서 한국정치를 이끌고 있다. 그는 반대세력을 과감히 켜 안을 수 있는 통 큰 정치도 했다. 그래서 마지막 남긴 말이 통합과 화합이었을 것이다.  


어제 국가장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보내면서 그 분의 탁월한 지도력과 한 맺힌 분열과 아쉬움을 교훈삼아 다시는 이러한 시행착오와 분열이 없기를 기원하고자 한다.
끝으로 미국의 50개주의 1개주 만큼 보다 작고 중국의 1개 성보다도 작은 대한민국이 남북으로 분단되고 그것도 모자라서 동․서로 나눠지고, 이제는 충청도까지 분열되는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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