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호(해남군행정동우회 회장)

양사재(養士齎)는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 일부 뜻있는 유지들이 세운 향교학당으로 지금의 해남읍 수성노인당이 그곳이지만 이를 아는 군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순조 3년(서기1803년) 지역유지 이용윤 선생은 양사재 서(序)에서 조선8도 360주 중 유일하게 해남만 학교가 없음을 한탄하면서 민유현, 이기욱 씨 등과 함께 거군적인 모금활동을 전개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 결과 수많은 군민들의 호응으로 모아진 재산이 수백금에 이르러 1경의 토지까지 매입했다고 적고 있다.


이때는 전근대적 농업시대로, 가난한 사람들은 식구들 호구지책도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이렇듯 막대한 재원이 모아진 것을 보면 해남의 강한 교육열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 이후 우록 김봉호 선생은 1997년 새금학당(塞琴學堂)을 만들어 후진양성을 시도했고 오늘날에는 해남에 삼호학당(三呼學堂)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지금 우리에겐 시대에 초연하면서도 자기소신과 의지를 굽히지 않는 진정한 선비정신을 기르고 논하는 제2의 양사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릇 나라든 지역이든 결국 훌륭한 리더를 갖느냐 갖지 않느냐 일 것이다.
세상에 인재를 키우는 일만큼 중요한 게 또 있겠는가.


지금 해남엔 대학이 없다.
지역발전의 원동력을 말할 때 대학의 의미는 매우 크다. 우선 지역에 대학이 없으면 지역인재들은 고스란히 다른 곳의 대학을 찾게 된다. 물론 저마다 더 나은 학문추구를 위함이겠지만 그 인재가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기는 힘들다. 물론 공직지원 같은 것을 통해 지역에서 근무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고급두뇌를 받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역에 대학이 없을 때 또 하나의 문제는 대학의 구성원 등 인적 물적 자원의 지역환원 효과는 차치하고라도 산학연계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역의 새로운 소득창출과 유통전략에 이르기까지 대학은 전문적인 연구개발을 맡고 생산자나 이용하는 사람은 그 학문이나 기술을 쉽게 배울 수 있지만 대학이 없을 경우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작금의 우리 농어촌의 실정으로는 대학유치나 설립이 사실상 어려운 게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가 진정으로 농어업을 살리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거점지역에 전혀 새로운 형태의 농수산 전문대학부터 세워야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우리나라 국회에는 농수산전문 국회의원이 한사람도 없다 한다.


관련해 우리 지역에는 이제 가칭 해남발전연구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회가 날로 복잡다단하고 전문화되다보니 공무원들의 기획만으로는 여러 한계가 있을 수 밖 없다. 그로인해 우리군에서도 한해 십수건 씩의 전문용역을 의뢰하고 있으며 실제로 올해 용역예산만도 1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이제 우리만의 (필요시 인근지역과 공동으로) 전문 연구기관 설립이 긴요하다고 본다. 따지자면 10억이면 웬만한 연구소 한해 연구비가 될터인데 왜 그 돈을 해마다 외지용역기관이나 회사에 쓰느냐는 말이다. 외지용역의 또 다른 문제는 용역결과물의 부실이다. 다른 지역의 용역사(연구원)들이 설계 작업을 하다보니 지역실정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연구가 되는가하면 심지어는 기존의 다른 유사계획에다 명칭과 수치만 고쳐 쓰는 용역까지 내놓기도 한다하니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군민들이 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 당장 연구원 설립을 하자는 게 아니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군에서 이 과제를 공론화해 결론을 얻고 합의가 이뤄진다면 다시 연구원 설립 기금구좌를 설치해 조성하면 될 것이다. 장차 이 기금이야말로 지금도 조성중인 인재육성 기금과 함께 길러진 고급인재들이 고향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우리군으로서도 보다 세심하고 치밀한 발전전략을 세울 수 있어 결과적으로 군정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무한경쟁 속에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선 무엇보다 독특한 콘텐츠 개발이 관건이고 이를 개발하는 능력 또한 치열한 두뇌싸움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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