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희(북 멘토)

호남 없는 정치개혁…그건 민주주의의 퇴보다

얼마 전 호남을 정치적으로 소외시키는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정교한 분석을 담은『아주 낮선 상식』이라는 제목의 매우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서남대학교에서 헌법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욱 교수가 쓴 책인데 그 부제가 바로 이 칼럼의 제목인 ‘호남 없는 개혁에 대하여’다.
저자는 영남패권주의와 호남의 저항적 지역단결이 동일한 지역주의 문제로 호도되고, 문제의 핵인 영남패권주의 프레임 자체가 ‘호남문제’로 뒤집혀 버렸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작금의 정치현실을 보자. 영남패권주의에 당당히 맞섰던 호남은 ‘호남 없는 개혁’이 돼야 한다는 훈계나 듣는 신세로 전락해, 정치적으로 호남을 입에 담는 순간 지역이기주의자와 분열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다. 호남은 개혁·진보 세력의 집권을 위해 몰표를 주고서도 지역주의적 투표 행태를 보인다고 매도의 대상이 된다.
지역적 욕망을 드러내서도 안 된다. 일방적으로 이용당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못 받는 호남의 처지를 항변하는 목소리는 망국적 지역주의 선동으로 규탄된다.
그간 ‘지역감정’, ‘호남차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던 ‘영남패권주의’는 한국 정치사회를 강하게 짓누르는 살아 있는 이데올로기이자, 우리의 공론장에서는 결코 쉽사리 등장할 수 없는 금기어가 돼버렸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은 무엇이 있을까? 저자에 따르면 먼저 “영남패권주의적 탐욕과 싸우자면서 어떻게 그런 지역적 욕망을 의제로 만들 수 있느냐. 그럼 둘 다 똑같지 않느냐”는 도덕적 비난을 거부하고 거기서 자유로워져서 호남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요구하라고 주장한다.
두 번째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일당 지배에서 벗어나 호남 복수정당제를 도입해야 한다. 복수의 정당들이 호남지역에서 경쟁하게 만들어 호남의 세속적 욕망을 담아내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한데, 대통령제하에서는 인구분포상 호남이 아무리 일치단결해도 영남패권주의를 이길 수 없어 애초에 정상적인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한계를 깨려면 정당지지율(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아울러 내각제를 패키지로 도입해 ‘정당국가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만이 인구 차이에 의한 지역적 불균형과 계층(계급)적 불균형을 원천적으로 시정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필자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공감한다. 야당은 명실상부한 전국정당화를 위해 호남 색깔을 지우려고 애를 쓴다. 이는 야당의 집권을 원하는 많은 개혁·진보 세력도 동의하는 불문율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명분은 개혁·진보를 내세우지만 호남만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왜 호남은 자신들의 이익을 철저히 대변해 줄 정당을 가지면 안 되는 것이고, 왜 대통령후보를 내면 안 되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지역적 평등 정신이고 민주주의 정신이 아니던가.
호남 유권자들이 다른 지역 유권자들에 견줘 더 민주주의적이고 더 윤리적이어야 할 의무를 언제까지 부담해야 할까.
영남후보를 호남몰표로 뒷받침하고도 당선 뒤엔 호남의 지역주의로 공격받는 이 불공정한 게임, 이 괴이한 프레임을 이제는 걷어차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김욱 교수의 견해에 대해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이 글 또한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지역 이기주의자라는 비난이 날아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간 ‘지역감정’, ‘호남차별’이라는 이름으로 호남인들을 옭아맨 ‘지역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그리고 솔직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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