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어떻게 여미느냐에 따라 삶 자체의 존엄성이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웰-다잉법’이 연초에 국회를 통과해 2018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회복 가능성이 없음에도 중환자실에서 특수장비에 의존해 연명(延命)하고 있는 환자에 대해 무의미한 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치료를 해도 생존할 가능성이 없는, 즉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로 생명을 연장하는 대신 품위 있는 죽음(尊嚴死)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제도화하자는 취지다. ‘웰-다잉 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안의 본래 이름은 꽤 길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 이름 그대로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하는 결정에 대해 적시하고 있다. 연명의료라 함은 사망에 임박한 환자에 대해 치료효과 없이 단지 ‘생존해 있는 기간을 늘리기 위해서만’ 행해지는 의학적 시술을 말한다.
연명의료 중단이란 임종 단계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 네 가지 연명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다만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공급, 물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을 보류하거나 중단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연명의료결정 이행 단계에서는 환자의 의사에 따라 담당의사가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와 19세 이상인 환자가 작성해 둔 사전의료의향서등을 통해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고,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없는 경우에는 환자 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과 담당의사 등의 확인을 거쳐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뜻을 확인한다. 무의미한 치료에 고통 받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존엄사의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점, 특히 죽음에 관한 자기결정권이 부여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 찬성론자들은 이 법은 국가가 처음으로 말기 암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죽음의 권리를 존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환자와 보호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존엄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될 것을 우려한다. 즉 “의료비용이나 실익 문제로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인간인 환자를 기계적, 유물론적 관점에서만 파악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면서 “인간의 출생과 죽음에는 어떤 선택도 자리 잡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이 법의 제정에 대해 찬성한다. 그러나 몇 가지 생각해볼 문제들이 있다. 먼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의사 전달에 어려움이 있는 환자라도 그 생명을 살리는 행위를 중단하는 것은, 생명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중대한 훼손인 ‘안락사’를 용인하거나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자기결정능력이 현저히 약한 사람들에 대한 남용의 위험이 있다. 두 번째로, 인간의 (죽을) 권리라는 이슈로 접근하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치료비용, 보험관계 등 철저한 자본주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 법에 의해 ‘품위 있는 죽음’으로 포장되며 경제적 이유나 병원 사정 등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돈의 압박에 의해 목숨을 저버리는 결과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는 것을 환자에게 알리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안겨줄 수 있으며 특히 저소득층과 건강보험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환자들은 병원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면 가족들로부터 존엄사의 압력을 받을 가능성도 있어서 ‘웰-다잉법’ 이야말로 ‘늙고 약한 사람들을 세상 밖으로 쫓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우리의 태어남이 평등하지 못했다면 죽음만이라도 평등해야하지 않겠는가?
이에 대해 앞으로 2년 동안 철저한 준비가 이뤄져서 이 법이 시행돼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읽은 ‘도메니코 보라시오’가 쓴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이라는 책에서 그 해법을 조금은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자율적으로 죽는다는 것은 우리가 원한다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 말이 우리 각자에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내야 한다’며 ‘모든 인간이 경제상황이나 잠재능력과 관계없이 죽을 때까지 동일하게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겨들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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