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희(북멘토)

지난 일주일간 국내 정치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국회의장에 의해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야당의원들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었다.
이전의 새누리당의 횡포에 무기력하게 끌려가기만 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필리버스터 안을 들고나와 국민에게 한 번 제대로 싸워보겠다는 메시지를 던져줬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야당다운 야당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당은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고, 선거법을 통과시켜야 하며, 무엇보다도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고, 야당 또한 선거를 앞둔 이념 프레임에 걸려들지 않고, 총선승리를 위한다는 핑계로 거의 200여 시간에 걸쳐 이어진 필리버스터를 멈췄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은 국민들의 명령을 읽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테러방지법을 막아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야당의원들이 끝까지 처절하게 싸우다 멋지게 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는 것과 그러한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신뢰가 만들어지고 야권의 표가 결집되고 다음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더불어민주당은 깨닫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경계하고 경계했지만 결국 이번에도 보수집권파의 그 지긋지긋한 ‘경제와 안보’ 프레임에 걸려들었다. 물론 우리는 지금 장기침체의 길목에 들어서고 있으며, 모두들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오죽하면 압도적인 자살률 1위의 국가이겠는가. 또, 북한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자 우리는 대북방송을 재개하고, 개성공단을 폐쇄하며, 사드를 배치한다고 대응한다. 언제나 그렇듯 또 선거를 앞두고 북한과 대한민국 보수집권층이 ‘적과의 동침’에 들어갔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과연 ‘안보와 경제 살리기’인지. 우리는 왜 항상 보수집권층의 과대한 안보위협에 속아야 하고, 경제살리기가 최우선이 돼야 하는지? 지금까지 충분히 당하지 아니하였는가? 북한이 언제 도발해올지 모르고, 경제가 살아나야 서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진다고. ‘안보와 경제’ 프레임에 빠져서 정치가 허우적대고 실종되는 순간 정치는 무능해지고,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만다. 정치가 실종되는 순간 ‘안보와 경제’ 프레임의 괴물이 기승을 부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물론 안보도 중요하고, 경제도 살아나야 한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안보이고 누구를 위한 경제 살리기인가. 왜 우리는 항상 정치가 우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안보도 경제도 모두 정치의 영역 안에 포섭된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진정한 안보는 공포조장과 무력경쟁이 아닌 정치 외교적 역량을 통해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며, 우리 헌법은 공정한 경제에 대해 119조 등에서 규정하고 있다. 지금은 대기업 살리기보다는 공정한 분배가 필요한 시점이며 북한과의 평화협정 등을 통해 국방비를 절감해 불평등을 해소해야 할 시점이다. 이 모든 문제의 해결방법은 민주정치의 회복에서부터 시작한다. 정치가 우선이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것인 것 같은 민주주의를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역설해야 한다. 냉소와 혐오 그리고 안보와 경제프레임은 민주정치의 가장 큰 적이다. 철학자 ‘슬라보이 지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은 바로 우리다.”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주체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그런 주체가 돼야 한다. 우리가 정치를 바꾸고 바로 세워야 한다.
지난 1992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  당시 아칸소 주지사가 사용했던 짧지만 강력한 슬로건이었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는 답답했던 경제 상황에 지쳐있던 미국인들에게 기대감을 안겼다. 결국 무명에 가까웠던 클린턴은 걸프전 승리로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던 조지 H. W. 부시의 재선을 막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안보와 경제보다 바로 정치다. 민주정치의 복원이다. 정치의 복원만이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필자는 클린턴의 구호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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