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재걸(전 언론인)

선거철이 되면 우리 호남을 두고 영혼이 없는 발언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문제는 이러한 발언들이 전혀 사실이 아니거나, 호남인들의 가슴에 크나큰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이다. 
얼마 전 광주를 방문한 김종인 더불어 민주당 대표의 ‘호남 구애론’도 그중 하나다. 김 대표의 발언 요지는 “나도 호남에서 초, 중학교를 졸업했다”며 “뿌리가 여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광주에 대한 지역연고를 강조했다. 이에 대해 어느 당에서는 김 대표에 대해 “(1980년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전력으로 광주에 깊은 상처를 주고 햇볕정책 훼손 발언 등으로 야당의 정통성마저 부인한 사람”이라며 “정글에서 못된 짓만 하다가 여우 집에 굴러온 늙은 하이에나처럼 무례하기 짝이 없는 작태”라며 그의 전력을 문제 삼았다. 
호남인들이라면 다 아는 일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과연 어떤 조직인가 하는 점을 새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겪은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국보위란 한마디로 광주를 죽이고 살인마 전두환을 떠받치는 통치기구”라고 말한다. 언필칭 “국보위는 1979년 10.26 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80년 5월 31일 전국비상계엄 하에서 설치된 단체”라지만 사실은 상임위원장 전두환(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 강경세력으로 구성된 ‘최고회의’ 성격을 띠었던 단체다. 사실이 이러하니 광주 인사들이 “(80년 5월) 광주를 죽이고 살인마 전두환을 떠받친 단체"라고 말할 만하다.
다시 말해 ‘김 대표는 과거 이러한 반민주적 군사독재자의 하수인’이었다는 말로 집약된다. 거기다가 김 대표는 과거 전두환 치하에서 호남인들이 지역적 차별에 시달릴 무렵 “할아버지만 호남에 연고가 있을 뿐 자신은 호남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도 전해진다. 이렇듯 호남과 호남인들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존재란 말인가?  
김 대표의 정치적 언행을 보면서 필자는 비슷한 또 한 분의 정치인을 떠올리게 된다. 그분은 다름 아닌 고건 전 총리이다. 김 대표가 과거 군사독재시절 “자신은 호남출신이 아니다”면서 “다만 할아버지가 태어난 곳일 뿐”이라고 굳이 호남과의 연고를 부인했던 사실과 대단히 흡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두 분 모두 호남지역 중에서도 전북 출신으로 유명 인사인 부친의 후광을 입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잘 알다시피 고건 전 총리의 부친은 고형곤 전 전북대학교 총장으로 철학계의 존경받는 원로 석학. 이에 비해 김 대표는 이승만 대통령과 맞선 강직한 성품의 대한민국 사법부의 최 원로인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의 손자다. 
정치인들의 말에는 영혼이 없다고들 하지만, 필자는 이들 두 정치인에서는 호남의 디엔에이(DNA)를 결코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영락없이 이 두 분은 ‘정치적 쌍둥이’임이 분명한 것이다.
지난 대선(2006년 11월)을 앞두고 “고건에게는 호남의 DNA가 없다’는 일부 호남 대중들의 끈질긴 의혹이 제기 됐던 적이 있다. 그는 아버님(고형곤 박사)이 태어난 전북이 본적지일 뿐이지,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내내 성장한 전형적인 ‘서울내기’라는 주장을 공공연히 폈다. 그것이 자신의 출세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호남인들 사이에 ‘호남의 DNA’ 즉 ‘호남의 영혼’이 있느냐의 여부는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호남은 어느 지역보다도 지역민들의 정서가 지배하는 이 나라의 ‘정치특구’와도 같은 곳이다. 그러한 호남에서 ‘고건의 정체성’이 문제됐다면 결코 예삿일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호남출신이되, 속으로는 전형적인 서울내기인 그는 지난날 군사독재자들이 ‘얼굴마담’으로 써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7인의 대통령을 모신 그의 성공적인 공직생활도 사실은 호남에 대한 ‘안배케이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얘기다. “호남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 호남의 안배이익만을 독점적으로 누렸다”는 일부 호남인들의 비판 배경이기도 한 것이다.
김 대표는 얼마 후면 우리나이로 78세의 노인으로서 5선 비례대표 의원이 된다. 그가 ‘광주정신’을 궤멸한 국보위에 몸을 담고 호남출신임을 거듭 부정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호남인들의 상처 치유부터, 아니 호남인들에게 석고대죄부터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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