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석 천(전 해남동초 교사)

언어는 사회의 거울이라고 한다.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신조어(新造語)는 우리 사회의 현실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심사를 반영한다. ‘헬조선(hell+朝鮮)’,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 역시 그렇다.
금년 초 국내 K신문에 ‘흙수저의 길’이라는 상징성 그림이 실렸다. 수저 계급론을 그린 그림이다. 작가가 해설한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돈 사회다. 금 마차는 돈의 힘으로 달린다. ‘금수저’는 ‘금수저’를 낳는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끊어졌다. ‘흙수저’들은 세상을 떠받치며 가시 밭길 위에서 그거 견디고 있다. TV를 틀면 금수저의 삶이 생중계된다. 쌀 값 폭락 대책을 요구하려다 물태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는 농민 이야기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서민의 돈이 다시 한 번 대기업에 빨려 올라간다. 심지어 아파서 병원을 찾는 순간에도….」
수저계급론은 2015년에 청춘리포트가 선정한 사자성어인 ‘시저지탄(匙著之歎)’에서 확대됐다.
모든 것이 어둡기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아들, 딸들은 한 번쯤은 수저색깔을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냐? ‘금수저’냐 ‘흙수저’이냐에 따라 인생의 승패가 결정되는 병든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SNS에 떠도는 수저론을 보면 ‘금수저’는 자산 20억 원 또는 가구 연 수입 2억 원, 굳이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아도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는 행운아 들이다.
‘은수저’란 자산 10억 원 또는 연 수입 8000만 원, ‘동수저’는 자산 5억 원 가구 연 수입 5000만 원이며, 연 수입 2000만원 이하로 허덕거리며 살아야 하는 서민들이란다. 이제는 플라스틱 수저, 티스푼까지를 말하며 ‘흙수저 빙고 게임’까지 나왔으니 암울한 시대인 것은 분명하다. 올해 초에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직장인 직장인 1365명을 대상으로 공동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의 84.9%가 ‘수저계급론이 씁쓸하긴 해도 부인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답했다고.
수저론은 부모의 자산이 나의 현재를 만들고, 그 자산의 상속으로써만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신(新) 계급론이고 사회의 균열이며 양극화 현상이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사회의 양극화 때문에 정치가 양극화된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정치때문에 사회가 분열된다고 했다.
이 어두운 현실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이 땅의 젊은이들이 취업 자체를 기적으로 생각하고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을 포기한 5포, 나아가 7포, 9포 그리고 포기할 것 마저 없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엔(N)포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니 그야말로 위기시대다.
흙수저들이 희망을 잃고 로또 판매점 앞을 서성이며 노력이 아니라 행운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면 이 땅에서는 도덕적인 정직이나 진실이라는 말이 의막 없어진다. 또, ‘초년 고생은 사서 하랬다.’는 옛말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는 이미 빛깔을 잃었다. 이 위기감 속에서도 자야실현을 위해 버둥대는 아들, 딸들을 바라보고만 있자니 힘없는 아버지는 안타까운 마음만 더해 간다.
복중의 복은 부모를 잘 만난 복이라는 말에 ‘NO’라고 용기 있게 부정할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 이 사회의 합리’라고 외친 S대생의 마지막 소리는 아버지의 위치에선 너무 아픈 소리다.
하지만 학생의 말에 ‘NO’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 모두 슬픈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수저 색깔에 따라 부나 빈곤이,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는 생각이 사회의 패러다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이 땅의 아들, 딸들에게 이런 말로 희망을 주고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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